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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투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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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고초려

By 故事大全 , 1 September 2025

【출전】 (삼국시대·촉) 제갈량의 『출사표』

【의미】 고(顧): 방문하다; 모로(茅廬): 초가집. 험한 집을 세 번이나 찾아가는 것을 말한다. 진심 어린 성의를 가지고 유능한 인재를 여러 번 초대하고 방문함을 비유한다.

【역사 고사】 동한 말기, 환관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조정의 정치가 무너지자 각지의 영웅들이 군대를 일으켰다. 유비는 한나라 왕실의 후손으로 오랫동안 군대를 일으켜 왔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와 합세했고, 유비 자신도 사방에서 인재를 적극적으로 구했다. 어느 날, 모사 서서가 제갈량을 유비에게 추천하자, 유비는 매우 기뻐하며 직접 제갈량을 방문하기로 결심했다.

제갈량은 어려서 부모를 여의었고, 성년이 되자 룽중(隆中)의 와룡강(臥龍崗)에 초가집 몇 채를 지어 정착했다. 그는 사서를 정독하고 학식이 풍부했으며, 천하의 대사를 깊이 연구하고 있었다. 그는 자주 자신을 춘추전국시대의 관중(管仲)과 낙의(樂毅)에 비유했고,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가 뛰어나다고 생각하여 존경스럽게 '와룡선생(臥龍先生)'이라 불렀다.

유비는 관우와 장비를 데리고 선물을 가지고 밤새 룽중으로 갔다. 문지기 어린 소동자가 그들이 주인을 만나러 왔다는 말을 듣고 대답했다. "선생님께서 집에 안 계십니다. 아침에 나가셨는데 어디 가셨는지, 언제 돌아오실지도 모릅니다." 유비는 실망하여 와룡강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며칠 후, 유비는 제갈량이 집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관우와 장비와 함께 눈보라를 헤치고 룽중으로 갔다. 그러나 도착해서야 제갈량이 전날 친구와 함께 떠나 여행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세 사람은 또다시 헛수고하고 말았다.

며칠 후, 유비는 제갈량을 세 번째로 모시기 위해 나서려 했다. 관우와 장비는 다소 화가 났지만, 유비는 실의에 빠지지 않았다. 세 사람은 다시 와룡강에 도착했고, 어린 소동자가 제갈량이 자고 있다고 하자, 유비는 공손히 초가의 계단 아래 서서 기다렸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소동자가 나와 세 사람을 안으로 들여보내며 '선생님이 깨셨다'고 전했다.

자리에 앉은 후, 유비와 제갈량은 서로 인사를 나누었고, 이어 천하의 대사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유비는 백성들이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결심과 뜻을 밝혔고, 제갈량은 유비의 겸손하고 성실한 태도를 보고 말했다. "경주(荊州)는 지세가 험하고 군사적으로 유리한 요충지입니다. 유표(劉表)가 그것을 지킬 수 없다면 장군께서는 차지하셔야 합니다. 먼저 경주를 점령하여 기반을 굳히고, 다음에 익주(益州)를 얻은 후, 손권과 동맹을 맺고 서남의 여러 민족과 우호 관계를 맺으십시오. 때가 무르익으면 중원으로 진출하십시오. 그리하여 천하를 통일하는 대업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유비는 이를 듣고 감탄하여 온몸을 던져 경의를 표했고, 제갈량을 모셔내고자 하는 뜻을 밝혔다. 제갈량은 사양하지 않고, 바로 다음날 유비와 함께 신야(新野)로 떠났다. 그 후로 제갈량은 자신의 모든 지혜와 재능을 다해 유비를 보좌하며 천하를 평정하는 데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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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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