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전】 (당나라) 간강(干康)의 『투예제기(投謁齊己)』
【의미】 강을 사이에 두고 불이 나는 것을 바라본다. 일에 관여하지 않고, 팔짱을 끼고 지켜보는 태도를 비유한다.
【역사 고사】
서기 202년, 원소(袁紹)가 병으로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곧 죽고 말았다. 그의 세 아들은 곧바로 권력 다툼을 시작했다. 맏아들은 배제되었고, 권력은 둘째 아들이 장악했으며, 막내 아들은 이 결정을 지지했다. 당연히 맏아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로 인해 원가(袁家) 형제들 사이에 내분이 시작되었다.
조조(曹操)는 그들의 내부 갈등을 기회로 삼아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그의 위협은 원가 형제들로 하여금 다툼을 잠시 접고 외부의 적에 맞서 연합하게 만들었다. 조조는 군대를 철수하여, 원가 형제들에게 내전을 준비할 더 많은 시간을 주었다. 원가 형제들은 여전히 각자의 입장을 고수하며, 전쟁은 점점 격화되었다. 이후 3년간 조조는 원가 형제들의 불화를 적절히 이용하여 그들의 일부 영토를 차지했다.
서기 205년, 조조의 군대는 원가의 맏아들을 공격하여 죽였다. 이때쯤 조조는 원씨 가문의 대부분 영토를 이미 장악한 상태였다. 원가의 두 형제는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오환(烏桓)이라는 유목민족의 보호를 요청했다.
2년 후인 서기 207년, 조조는 원가 형제를 보호하고 있던 오환족을 공격했다. 긴 행군 끝에 조조의 군대는 오환족을 무너뜨리고 그 지도자를 죽였으며, 원가 형제는 틈을 타 도망쳤다. 그들은 또 다른 먼 곳의 유목민족 지도자 공손강(公孫康)의 휘하로 도망갔다.
황하 이북을 평정한 후, 하후돈(夏侯惇) 등은 조조에게 공손강을 공격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조조는 웃으며 말했다. "너희가 다시 군대를 출동할 필요 없다. 며칠 후면 공손강이 스스로 이원(二袁)의 머리를 가져올 것이다." 장군들은 모두 믿지 않았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공손강은 진짜로 원희(袁熙)와 원상(袁尚)의 머리를 보낸 사신을 파견했다. 모든 장군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조조의 신통력 있는 예측에 감탄했다. 조조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봉효(奉孝)의 예측이 틀리지 않았구나!" 하고 말하며, 곽가(郭嘉)가 죽기 전에 남긴 편지를 꺼냈다. 곽가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원희와 원상이 요동(遼東)으로 도망간다는 소식을 들으면, 주공께서는 절대로 군대를 보내지 마십시오. 공손강은 늘 원씨 가문이 멸망한 후 두 원(袁) 형제가 자신을 찾아올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만약 군대를 이끌고 그를 공격한다면, 그들은 반드시 힘을 합쳐 맞서 싸울 것이며, 성급하게 행동하면 목적을 이루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천천히 움직인다면, 공손강과 원씨 형제는 반드시 서로를 노리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정찰병이 조조가 요동을 공격할 의도가 없다는 보고를 전하자, 공손강은 즉시 원희와 원상을 처형하여 조조가 한 방의 피도 흘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게 되었다.
【성장의 교훈】
적은 투자로 큰 승리를 거두기 위해, 먼저 적의 내부 갈등을 조용히 지켜보며 자신은 '강 건너 불 보듯' 하여 어부지리를 얻는 것은, 고명한 전략가들이 자주 사용하는 수단이다. 적의 모순이 부각되고 서로 밀고 당기는 기세가 점점 뚜렷해질 때, '불난 집에 들러리 서기(趁火打劫)'를 서두르면 안 된다. 성급한 행동은 오히려 일시적인 동맹을 형성하게 하여 적의 내부 결속을 강화시킬 수 있다. 이때 오히려 일부러 한 발 물러서서 적의 내부 모순이 격화되고 서로 죽이게 될 때까지 기다린다면, 어부가 그 틈을 타 이득을 보듯이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