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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파서 어머니를 만나다

By 故事大全 , 7 September 2025

『좌전(左傳)·은공원년(隱公元年)』에 기록되어 있다. 정장공(鄭莊公)에게는 형제가 둘이 있었는데, 어머니 무강(武姜)이 장공을 낳을 때 난산을 겪었기 때문에 그를 싫어하게 되었고, 그래서 그를 '오생(寤生)'이라 이름 지었다. 반면에 동생 숭단(叔段)에게는 온갖 사랑을 쏟아 부었다. 옛 제도에 따라 맏아들인 오생은 당연히 왕위를 계승하여 정나라의 군주가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 무강은 더욱 불만을 품고, 숭단의 세력을 키워 장공을 대체하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먼저 숭단을 위해 제읍(制邑, 지금의 정저우 상제)을 봉지로 달라고 장공에게 청했지만, 장공이 거절했다. 이에 무강은 다시 장공에게 숭단을 경상성(京襄城, 지금의 영양)에 봉해달라고 요청했고, 장공은 이를 승낙했다.

숭단이 경지에 도착한 후, '경성태숙(京城太叔)'이라 불리며 병사를 모으고 말을 사들이며 성곽을 쌓아 반란을 준비했다. 경사 제중(祭仲)이 이를 알고 장공에게 알렸다. 장공은 "내 어머니 무강께서 원하시는 일인데,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제중이 말했다. "무강께서는 결코 만족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차라리 일찍이 그들을 적당한 곳으로 옮겨 두는 것이 낫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다루기 어려워질 것입니다." 장공은 "불의를 많이 행하는 자는 스스로 망하게 마련이다. 기다려 보라!"고 답했다.

정장공 22년(기원전 722년), 숭단은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하고 어머니와 반란 날짜를 상의했다. 무강이 결정을 내린 후 숭단에게 편지를 보내 즉시 군사를 일으키고 자신이 내응이 되겠다고 알렸다. 그러나 이때 정장공은 이미 두 사람의 음모를 알고 있었고, 그들의 비밀 편지를 가로챘다. 증거를 확보한 장공은 즉시 공손여(公孫呂)를 보내 200대의 전차를 이끌고 경상성을 포위하게 했다. 숭단은 당황하여 재빨리 옌링(鄢陵)으로 도망쳤으나, 장공의 추격을 받아 결국 공성(共城, 지금의 허난성 후이hsien)으로 달아나 자살하고 말았다.

이러한 사건 이후 장공은 무강에 대한 원한이 더욱 깊어져 "황천(黃泉, 지하 세계)에 가기 전까지는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장공은 무강을 영지(潁地, 지금의 등봉 영양)로 보내 거주하게 했다.

시간이 흐른 후 장공은 어느 정도 후회하게 되었다. 영지의 관리인 영고서(潁考叔)를 연회에 초대하여 접대하던 중, 영고서는 모자 간의 화해를 위해 식사 도중 맛있는 음식을 소매에 감추었다. 장공이 매우 이상하게 여겨 "이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영고서가 말했다. "제 어머니는 오랫동안 시골에 계셔 임금님의 음식을 먹어보지 못하셨습니다. 제가 가져가 어머니께 드리고, 제 효심을 표현하고자 합니다." 정장공은 이에 자신과 어머니 사이의 파탄난 관계를 설명했다. 영고서가 말했다. "이건 쉬운 일입니다. 우리는 지하로 터널을 파서 황천에 이르게 하고, 그 안에 복도와 방을 만들어 그곳에서 만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장공은 이 방법이 매우 적절하다고 느껴 영고서에게 이 일을 맡겼다.于是 영고서는 신속히 움직여 경상성에서 곧바로 터널을 파내고, 장공과 어머니가 그곳에서 만나도록 했다. 모자(母子)는 만나자마자 서로를 껴안고 통곡했고, 이로부터 다시 화해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땅을 파서 어머니를 만나다' 이야기의 유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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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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