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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일전(背水一戰)

By 故事大全 , 10 September 2025

해석: 강을 등지고 싸워 퇴로가 없다. 후퇴할 길을 없애고, 결사의 각오로 싸우는 것을 묘사한다.

이 사자성어는 『사기(史記)·회음후열전(淮隂侯列傳)』에서 유래하였다. "신(信, 한신)이 만 명을 선봉으로 보내, 진군하여 강을 등지고 진을 쳤다. 군사들은 모두 결사의 각오로 싸워 패배할 수 없었다." 한신(韓信)은 회음(淮陰, 지금의 장쑤성 칭장 남서쪽) 사람으로, 한왕 유방(劉邦)의 대장이었다. 항우(項羽)를 물리치고 천하를 차지하기 위해 그는 유방을 위해 계책을 세웠다. 먼저 관중(關中)을 공략한 후, 황하를 동쪽으로 건너 유방을 배신하고 항우를 섬기던 위왕 포(魏王豹)를 격파하여 포로로 잡았다. 이어 동쪽으로 진격해 조왕 섭(趙王歇)을 공격했다.

한신의 군대는 '정형구(井陘口)'라 불리는 매우 좁은 산길을 통과해야 했다. 조왕의 모사 이좌거(李左車)는 정형구를 막고, 동시에 별동대를 보내 소로를 이용해 한군의 보급 물자와 식량을 차단할 것을 주장했다. 이렇게 되면 원군 없는 한신의 원정군은 반드시 패배할 것이었다. 그러나 장군 진여(陳餘)는 이 말을 듣지 않고, 병력의 우세를 믿고 한군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기를 고집했다.

한신은 이러한 상황을 알고 매우 기뻐했다. 그는 군대를 정형구에서 30리 떨어진 곳에 진영을 설치하게 하고, 한밤중에 장병들에게 간식을 먹이며 "승리를 거둔 후에 마음껏 배불리 먹자"고 말했다. 이후, 그는 2천 명의 경기병을 소로로 은밀히 파견하여 조군이 진영을 떠난 후 즉시 조군 진영에 돌입해 한군 깃발로 바꾸도록 지시했다. 또한 1만 명의 군대를 보내 일부러 강을 등지고 진을 쳐 조군을 유인했다.

새벽이 되자, 한신이 군대를 이끌고 공격을 개시했고, 양군은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잠시 후, 한군은 의도적으로 패주해 강가의 진지로 물러났다. 조군은 진영을 모두 비우고 추격하기 위해 달려나왔다. 이때 한신은 주력부대의 공격을 명령했고, 강을 등지고 진을 친 병사들은 퇴로가 없었기 때문에 되돌아 적군을 맹렬히 공격했다. 조군은 승리를 거두지 못했고, 진영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갑자기 진영 안이 한군 깃발로 뒤덮인 것을 보고 사방으로 도망쳤다. 한군은 승세를 타고 추격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승리를 기념하는 자리에서 장군들이 한신에게 물었다. "병법에 이르기를, 진을 칠 때는 산을 등지고 물이나 습지를 앞에 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선생께서는 우리에게 물을 등지고 진을 치게 하시고, 조군을 무찔러야 배불리 먹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때 전혀 믿을 수 없었지만, 어찌어찌 승리했습니다. 이것은 도대체 무슨 전략입니까?"

한신이 웃으며 말했다. "이것 역시 병법에 있는 말입니다. 다만 당신들이 주의 깊게 보지 못했을 뿐이죠. 병법에 '죽을 땅에 몰려야 비로소 살고, 망할 땅에 몰려야 비로소 살아남는다(陷之死地而後生,置之亡地而後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만약 퇴로가 있다면 병사들은 모두 도망가 버릴 텐데, 어떻게 그들에게 목숨을 걸고 싸우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이야기에서 사자성어 '배수일전(背水一戰)'이 생겨났으며, 주로 군사 작전에 사용되지만, '결전'과 같은 성격을 지닌 행동을 비유할 때도 널리 쓰인다.

분류
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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