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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학려(風聲鶴唳)

By 故事大全 , 10 September 2025

사자성어 '풍성학려'에서 '려(唳)'는 새의 울음소리를 의미한다. 바람 소리와 학의 울음소리를 적군의 함성으로 오인하고, 추격군이 다가오는 줄로 착각하는 것을 말한다. 극도로 놀라 당황하고, 신경이 과도하게 긴장된 상태를 묘사한다.

이 사자성어는 『진서(晉書)·사전(謝玄傳)』에서 유래하였다. "견(堅)의 군대가 붕괴되어 도망치고, 나머지 병사들은 갑옷을 버리고 밤새 도주하다가 바람 소리와 학 울음소리만 들어도 모두 왕사(王師, 즉 진나라 군대)가 도착한 줄로 알고, 풀숲을 걸어 다니며 야외에서 숙박하다가 굶주림과 추위로 인해 십중팔구가 죽었다."

서기 383년, 전진(前秦)의 황제 부견(苻堅)은 90만 대군을 조직하여 남하해 동진(東晉)을 공격했다. 동진 왕조는 사석(謝石)을 장군으로, 사현(謝玄)을 선봉장으로 임명하고 8만의 정예병을 이끌고 맞서 싸웠다.

부견은 자신이 병력과 장수가 많아 진군을 반드시 이길 수 있다고 여겼다. 그는 병력을 안후이성 수양(수현, 壽陽) 동쪽의 비수(淝水) 강가에 집결시키고, 후속 대군이 도착하기를 기다린 뒤 진군을 공격하기로 하였다.

병력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사현은 계책을 세워 사신을 전진 진영에 보내 전진 선봉에게 제안했다. "귀군이 비수 강가에 진을 친 것은 명백히 신속한 승부보다는 장기전을 위한 것이 분명합니다. 만약 귀군이 조금 후퇴하여 우리 군대가 비수를 건넌 뒤 결전을 벌이게 해준다면, 오히려 더 좋지 않겠습니까?"

전진 장군들이 내부 회의에서 논의할 때, 모두가 비수를 사수하면 진군은 강을 건널 수 없고, 후속 대군이 도착하면 진군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으므로 진군의 제안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부견은 승리를 너무 간절히 원하여 장군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고 말했다. "우리 군대가 조금만 후퇴하여 진군의 절반이 강을 건너고 나머지 절반이 강을 건너는 도중에 정예 기병을 투입해 돌격하면, 우리 군대는 반드시 대승을 거둘 수 있다!"

이에 따라 전진 군대는 후퇴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부견은 예상하지 못했다. 전진 군대는 급조된 부대라 지휘 체계가 통일되지 않았고, 후퇴 명령만 받자마자 전선에서 패배했다고 오인하고 당황하여 뒤로 붕괴 도주하기 시작했다. 사현은 적군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부하들을 지휘해 신속히 강을 건너 공격했다. 전진 군대는 도주하는 도중 무기와 갑옷을 버리며 아수라장이 되었고, 서로를 밟아 죽은 병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운 좋게 진군의 추격을 피한 병사들은 도주하는 길내내 휘익거리는 바람 소리와 학의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진군이 다시 추격해온다고 생각하고,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이렇게 해서 진군은 '비수대전(淝水之戰)'에서 중대한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분류
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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