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조 시대에 십이지(十二支)를 연호(年號)로 사용할 뿐만 아니라, 유명한 문사(文士) 심형(沈炯)은 중국 최초의 흥미로운 십이지시를 지었다. "쥐 자국 책상에 먼지 쌓이고, 소와 양 저녁 노을에 내려오네. 호랑이 골짜기 울며 앉았고, 토끼 달 창문 향해 열리네. 용 늪 멀리 푸르고 푸르고, 뱀 버드나무 가까이 맴돌며. 말미꽃 멀리서 막 따오고, 양 지고 봄처음 모종하네. 원숭이 밤나무 열매 부끄러이 내놓고, 닭 도마 소리 맑은 잔 부르네. 개는 세상 밖 품었고, 돼지 구멍가에서 여유롭도다." 이 시는 첫 글자에 십이지의 이름을 순서대로 넣었으며, 각 동물의 본성을 두드러지게 표현하여 화룡점정(畫龍點睛)의 효과를 거두었고, 독창적이고 문학적 재미를 주었다.
남송의 유학 대가 주희(朱熹)도 십이지시를 한 수 지었다. 그는 십이지의 이름을 시구(詩句) 속에 교묘하게 흩어 넣었다. 시에 이르기를, "낮에 텅 빈 그릇 쥐 굶주려 갉아먹고, 아침에 야윈 소 몰아 황무지를 갈며. 때로 맹수 우리서 허풍 듣고, 옛터 토끼나라 흉해 탄식하네. 보라 잠자는 용 삼 겨울 누웠으되, 뿔로 뱀과 다투지 않으리. 수레 버리고 말 잡아 달리기 그치고, 양 삶아 술 사 여유로이 살리라. 손수 원숭이 복숭아 시든 녹색 흘리고, 기른 끈기(鵾雞: 옛 책에 학과 비슷한 새라 했음) 울음 각각하네. 손님 오면 개 짖으며 차 끓이라 재촉하고, 동네 집에서 돼지고기 살 필요 없네."
원나라 문인 유인(劉因)의 십이지시: "굶주린 독수리 쥐 놀라지 못하게 하고, 소 등 위 높은 눈 이 같은 광경 보네. 강산 호랑이 웅크린 듯 천 리 오고, 겨우 경주 토끼 굴밖에 분간 못하네. 물고기 용 물속 깊이 들어가 무한하고, 환영은 마치 잔 속의 뱀 같네. 말 귀 가을바람 따라 흔적 없이 사라지고, 염소 창자 같은 촉의 길 일찍 집에 돌아가네. 어찌하여 높은 문 앞에서 원숭이 춤을 추랴, 창자 울타리 닭장 모두 낙원이로다. 나무문 개 짖으며 이웃 늙은이 알리고, 신돼지 사 봄비에 감사하리라." 시에 십이지의 상징이 들어가 있으며, 각 구(句)마다 의미가 빛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명나라의 대학자 호엄(胡儼)도 십이지시를 지었다. 시에 이르기를, "전쥐 강 마시나 강 마르지 않고, 견우직녀 오래 만나기 어려워하네. 맨손으로 남산서 맹호 묶고, 달에서 토끼 잡으려 하늘 끝없이 멀도다. 이리용(驪龍)은 보주(寶珠) 있어 늘 깨어 있고, 뱀에 다리 그린 것 적당히 번거로울 뿐. 늙은 말 어찌 뿔을 낼 수 있으리, 수양 울타리에 머리 들이미는 것 분통만 터지네. 초나라 사람 원숭이 쓴 모자 웃지 말라, 닭 기르며 숲 언덕 늙어가네. 무양선(舞陽)서 개 잡아 패중(沛中) 시장에 팔고, 평진서 돼지 풀어 동해 머리에 두었도다." 첫 구의 '전쥐(鼷鼠)'란 물쥐를 가리키며, 둘째 구의 '견우직녀(牛女)'는 민간의 견우직녀 전설을 말한다. 다섯째 구의 '이리용(驪龍)'은 용의 한 종류로 턱 아래에 보주(寶珠) 하나를 지니고 있으므로 이리용이라 한다. 여덟째 구의 '수양(羝羊)'은 수컷 양을 말하며, '울타리에 머리 들이미는 것(觸藩)'은 양 뿔이 담장에 걸리는 것을 말한다. 열한째 구의 '무양(舞陽)'은 한나라 고조 유방이 명장 범개(樊噲)를 무양후(舞陽侯)에 봉한 것을 가리키며, 그는 옛날 강소성 패현에서 개를 잡아 팔며 생계를 꾸렸다. 마지막 구는 한무제 시대의 재상 공손홍(公孫弘)을 가리키는데, 그는 옛날 동해에서 돼지를 치며 살았다. 이 시는 십이지의 이름을 차례로 넣을 뿐만 아니라, 하나의 이름에 하나의 고사(故事)를 배치하여 독자로 하여금 흥미를 즐기면서도 그 내면의 뜻을 음미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