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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은 모든 성공의 근본이다

By 故事大全 , 23 August 2025

1977년, 황두두(黄豆豆)는 저장성 온저우(温州)의 외딴 산간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가 초등학교 2학년 때, 한 인민해방군 문공단이 그의 학교를 위문하며 공연을 했는데, 황두두는 그 순간 매료되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나는 언젠가 무용가가 되리라.' 그 꿈을 향해, 12살 되던 해 황두두는 상하이 무용학교에 입학하여 민족무용을 배우기 시작했다.

황두두는 키가 매우 작았다. 그와 함께 입학한 열 명이 넘는 동기들은 모두 키도 크고 유연성도 그보다 훨씬 뛰어났다. 친구들은 그를 비웃으며 말했다. "너 같은 키로 춤을 평생 직업으로 삼겠다니? 꿈도 꾸지 마라, 힘만 낭비할 뿐이야!"

자신의 신체적 한계와 친구들의 조롱 속에서 황두두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었다. "춤은 눈으로 보는 시각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영혼을 울리는 경지라고들 하는데, 키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감동적인 춤을 추지 못하게 될 운명인가?"

누구도 이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황두두 자신뿐이었다. 그는 수차례 자신을 다잡았다. "내가 믿는 모든 것을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이런 마음가짐을 갖게 된 후, 황두두는 무용 연습에 더욱 매진했다. 공연 안무를 할 때면 단순히 리듬과 동작의 완벽함만을 추구하지 않고, 작품 속에 자신을 완전히 녹여내는 '물아일체(物我兩忘)'의 경지를 추구했다. 이를 위해서는 탄탄한 무용 기본기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문화 소양도 필요했다. 황두두의 기숙사에서는 종종 밤늦은 시간까지 불을 켜고 고전과 현대 명저를 읽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점차 황두두의 예술적 기량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황두두가 21세 되던 해, 중국가무단(中国歌舞团)의 안무가 천웨이야(陈维亚)는 중국 무용계의 권위 있는 '도이배(桃李杯)' 대회에 출전할 무용극 '진용혼(秦俑魂)'을 제작하며 상하이가무단(上海歌舞团)에서 배우를 오디션했다. 황두두는 키가 작다는 이유로 학교조차 그를 오디션 대상자로 추천하지 않았다. 하지만 황두두는 자신의 '진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직접 안무한 춤을 준비했다. 어느 날 밤, 그는 늘 그렇듯 연습실에서 자신의 '진용혼'을 연습하고 있었다. 안무를 하다가, 진시황의 병마용(兵马俑)이 원래는 고독하고 무고한 제물이라는 생각이 들자, 슬픔과 분노가 밀려온 황두두는 발을 굴렀고, 손바닥을 마주치며 하늘을 향해 길게 탄식한 후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장면을 마침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던 천웨이야가 목격했다. 황두두의 춤을 본 천웨이야는 충격에 휩싸였다. 작은 체구의 황두두가 어찌나도 병마용의 웅장한 영웅적 기개를 춤으로 표현해내는지, 동시에 무용의 영기(灵气)를 잃지 않았다. 이는 키 크고 체격 좋은 배우들에겐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순간, 천웨이야는 마음을 굳혔다.

다음 날, 황두두는 천웨이야의 지명을 받아 '진용혼'의 주연으로 낙점되었다. 대회가 시작되자, 황두두가 연기한 '용(俑)'은 비범한 영기와 깊은 감성으로 가득 차 있었고,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를 이루며 서정적이고 깊이 있으며, 변천무상했다. '진용혼'의 뛰어난 연기를 바탕으로 황두두는 고전무용 남자부에서 1위를 차지했다. 대회 심사위원이자 현대 무용계 최고 권위를 지닌 '로잔 국제 발레 대회(Lausanne International Ballet Competition)'의 필리포(菲力迫) 회장은 열정적으로 평가했다. "황두두는 영혼으로 춤을 추고, 춤으로 영혼을 표현한다. 그는 틀림없이 훌륭한 무용가가 될 것이다!"

그날 밤, 필리포 회장은 예외적으로 황두두를 게스트로 초청하여 '로잔 무용 대회'에서 폐막 공연을 하도록 했다. '로잔 무용 대회'는 국제적으로 '무용계의 오스카'라 불릴 만큼 명성 높아, 많은 유명 무용수들도 참여하기 어렵다. 필리포 회장은 말했다. "무용이 관객에게 주는 것은 단순한 예술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영혼을 울리는 힘이다!"

귀국 후, 황두두는 더욱 긴박한 훈련에 몰두했다. 그는 고전무용 '취고(醉鼓)', 현대무용 '용기의 악수(勇气的握手)'와 '의자(椅子)', 무용극 '소무(苏武)'와 '반짝이는 붉은 별(闪闪的红星)' 등 하나하나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고, 국내외에서 일치된 찬사를 받았다. 이후 수년간 황두두는 미국의 <타임(Time)>지와 <댄스(Dance)> 잡지의 표지 인물로 선정되어 대대적인 보도를 받기도 했다. 2010년, 겨우 33세의 나이로 황두두는 중국무용가협회 제9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중국무용가협회 부주석에 선출되었다.

황두두의 사무실에는 그가 직접 쓴 글이 걸려 있다. "사물은 생각에서 비롯되고, 행동으로 이루어진다(事源于思而成于行)." 이는 인생의 철학이자, 황두두가 자신의 무용 인생을 정리한 가장 정교한 표현이다. 바로 '행동이 모든 성공의 근본'이라는 것이다!

분류
인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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