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어 '요령을 얻지 못하다(不得要領)'에서 '요(要)'는 허리, 즉 옷의 허리부분을 의미하고, '령(領)'은 옷의 깃을 의미한다. 옛날 사람들은 위에는 저고리, 아래에는 치마를 입었는데, 위의 옷을 들 때는 깃을, 아래의 치마를 들 때는 허리에 붙은 부분을 잡았다. '요령(要領)'은 사람의 의도를 비유하는 말로, 여기서는 태도로 확장되어 사용된다.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말이나 글을 할 때 핵심이나 요지를 잡지 못하는 것을 나타낸다.
이 성어는 『사기(史記)·대완열전(大宛列傳)』에서 유래하였다. "건(騫, 장건)이 월지(月氏)에서 대하(大夏)에 이르렀으나 결국 월지의 요령을 얻지 못하였다."
한무제가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북방 흉노로부터 항복해 온 사람들은 모두 흉노가 월지(月氏)를 무찔렀고, 월지 왕의 머리뼈로 큰 술잔을 만들었으며, 월지 사람들을 쫓아내고 말았고, 월지 사람들은 흉노에 대해 강한 원한을 품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흉노를 공격하고 싶었지만 다른 나라의 도움을 얻지 못했다.
당시 무제는 흉노를 없애려는 뜻을 품고 있었다. 이 말을 듣고 월지와 우호적인 왕래를 하려 했으나, 월지에 가려면 반드시 흉노의 땅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에 월지에 사신으로 갈 수 있는 사람을 모집하였다. 곧 랑관(郎官)이 된 장건(張騫)이 자원하여 사신으로 나서자, 무제는 이를 승인하였다.
불행하게도 장건이 흉노 지역을 지날 때 다시 붙잡혀 전우(單于)에게 압송되었다. 전우는 장건을 억류하며 말했다. "월지는 우리 북서쪽에 있는데, 너희 한(漢) 사람이 어떻게 거기까지 사신을 보낼 수 있겠는가? 우리가 월(越)나라에 사신을 보내려 하는데, 너희가 허락하겠는가?"
이렇게 장건은 흉노에게 10여 년 동안 억류되었다. 흉노는 그에게 아내를 주어 아들을 두게 했으나, 장건은 한나라가 맡긴 사절(使節)을 끝까지 간직하고 있었다.
나중에 흉노가 장건에 대한 감시를 완화하자, 장건은 수행원들과 함께 탈출하여 월지 방향으로 나아갔다. 수십 일간 여행한 끝에, 그들은 다원국(大宛國)에 도착하였다. 다원의 왕은 한나라가 매우 부유하다는 말을 들어왔고, 한나라와 왕래하고 싶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상태였다. 장건을 만나 매우 기뻐하며 어디로 가려는지 물었다. 장건이 대답했다. "저는 한나라의 명을 받아 월지에 사신으로 가던 중, 흉노에게 길을 막혀 이제야 흉노로부터 탈출하여 여기에 도착하였습니다. 왕께서 저를 위해 길을 안내해 줄 사람을 보내주시고, 월지까지 데려다 주신다면, 제가 한나라로 돌아가게 되면 한나라는 귀국에 수많은 재물을 선물할 것입니다." 다원의 왕은 장건의 말을 따르며 안내인과 통역을 보내 장건을 강거국(康居國)까지 데려다 주었고, 강거국은 다시 장건을 월지까지 데려다 주었다.
원래 월지는 흉노의 공격을 받아 왕이 살해되었으며, 대부분의 백성이 서쪽으로 이주하여 이곳에 정착하였는데, 이를 대월지(大月氏)라고 불렀다. 지금은 살해된 왕의 태자가 왕으로 책봉되어, 예전부터 존재하던 대하국(大夏國)을 다스리며 정착하여 살고 있었다. 그곳은 땅이 비옥하고 생산물이 풍부하며, 외부의 침략이 없어 평화롭고 안정된 삶을 누리고 싶었고, 한나라와의 거리도 멀다고 느껴 흉노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을 더 이상 품지 않았다. 장건은 대월지에서 대하에 이르기까지, 한나라와 함께 흉노를 공격하는 문제에 대해 월지의 명확한 태도를 얻지 못했다. 그는 그곳에서 1년 이상 머물다가 귀국 길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