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나라 말년 당나라 초엽에 춘어존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고향은 광릉이었다. 그의 집 마당에는 뿌리가 깊고 잎이 무성한 커다란 나한나무가 있었다. 무더운 여름 밤, 달이 밝고 별이 드문드문한 가운데 나무 그림자가 너울거리고 밤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시원하게 쉬기 좋은 곳이었다.
춘어존의 생일날, 친지들이 모두 모여 축수를 하였다. 그는 기쁨을 이기지 못해 술을 조금 더 마셨다. 밤이 되어 친지들이 모두 떠난 후, 그는 약간의 술기운을 느끼며 나한나무 아래에 혼자 앉아 시원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술에 취해 눈이 축축해지자, 그는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꿈속에서 그는 대괴안국이라는 나라에 도착하였는데, 마침 수도에서 과거 시험이 열리는 때였다. 그는 응시를 신청하여 시험장에 들어갔고, 세 차례의 시험을 마친 후 시문(詩文)을 아주 수월하게 지었다. 방정(放榜) 결과, 그는 일등으로 급제하였다. 바로 이어 치러진 전시(殿試)에서 황제는 춘어존이 풍채가 뛰어나고 거동이 우아함을 보고, 친히 그를 수석 장원(頭名狀元)으로 임명하고 공주를 그에게 시집보내며 아내로 삼게 하였다. 장원공은 마치마금이 되어, 당시 수도에서 화제가 되었다.
결혼 후 부부 사이가 매우 화목하였다. 춘어존은 황제의 명을 받아 남하군(南河郡)의 태수로 파견되어 20년 동안 머물렀다. 그는 태수 재임 중 수시로 하위 각 현을 순시하여, 관할하의 현령들이 부당한 짓을 하지 못하게 하여, 현지 백성들로부터 큰 칭찬을 받았다. 황제는 여러 차례 춘어존을 수도로 불러 승진시키려 하였으나, 현지 백성들이 태수의 부임 소식을 듣고 말머리를 붙잡으며 만류하였다. 춘어존은 백성들의 사랑에 감동하여 남아있기로 하고, 상황을 황제에게 상주하였다. 황제는 춘어존의 정치적 업적을 높이 평가하여 많은 금은보화를 하사하여 포상하였다.
어느 해, 적국의 병사들이 침입하였다. 대괴안국의 장군들이 군대를 이끌고 맞서 싸웠으나, 몇 차례나 적에게 크게 패배하여 전군이 무너지고 말았다. 패배 소식이 수도에 전해지자 황제는 크게 놀라, 급히 문무백관을 소집하여 대책을 의논하였다. 신하들은 전선에서 연이은 패배 소식과 적병이 수도로 다가오고 있음을 듣고 하나같이 얼굴이 흙빛이 되어 서로를 바라보며 속수무책이었다.
황제는 신하들의 모습을 보고 매우 분노하며 말했다. "평소에 너희는 편안하고 쾌적한 삶을 누리며 영광과 번영을 마음껏 누렸다. 그런데 조정에 일이 생기니 너희는 다들 입이 닫힌 호박처럼 겁에 질려 말 한마디 하지 못한다. 그런 너희들을 무슨 용도로 두겠느냐?"
재상이 곧장 황제에게 춘어존을 추천하였다. 황제는 즉시 명을 내려, 춘어존이 전국의 정예 부대를 이끌고 적군과 결전하라고 하였다.
춘어존은 성지를 받고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군대를 이끌고 출정하였다. 불쌍하게도 그는 병법에 전혀 지식이 없었기에, 적병과 맞서자마자 금세 패배하고 말았다. 그의 부하 병사들은 갑옷과 투구를 잃고 사방으로 도망쳤으며, 춘어존 본인도 거의 포로로 잡힐 뻔하였다. 황제는 크게 노하여 춘어존의 직위를 파면하고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춘어존은 분함을 이기지 못해 크게 소리치며 꿈에서 깨어났다. 그런데 보니 달이 나뭇가지 위로 올라와 있고, 밤하늘에는 별빛이 반짝이고 있을 뿐이었다. 비로소 그는所谓 남하군(南河郡)이란, 자기 집 마당에 있는 그 나한나무의 가장 남쪽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