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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 전투

By 故事大全 , 16 September 2025

기원전 206년, 일시적으로 강성했던 진 제국이 멸망한 후 중국 역사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당시 서초의 패왕 항우와 한왕 유방은 각각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여 천하를 놓고 다투기 시작하였고, 역사적으로 유명한 초한쟁패가 벌어졌다. 이 약 5년간 지속된 전쟁에서 한나라의 대장 한신은 "영채 안에서 전략을 세우고 백만 대군을 지휘하며, 싸우면 반드시 승리하고 공격하면 반드시 점령한다"는 뛰어난 지략과 병법 전략을 보여주었다.

한 고조 3년(기원전 204년) 10월, 한신은 1만여 명의 신병으로 구성된 한군을 이끌고 태항산을 넘어 동쪽으로 진격하여 항우의 부속국인 조나라를 공격했다. 조왕 희와 조군의 통수 장군 성안군 진여는 태항산 지역의 정경구(현재의 허베이성 정경현 동쪽)에 병력 20만을 집결시키고 유리한 지형을 차지한 채 한신과 결전을 벌이기 위해 준비했다. 정경구는 태항산의 8대 요새 중 하나이며, 그 서쪽에는 약 100리 길이의 좁은 산길이 있다. 이 길은 수비는 쉬우나 공격은 어렵고, 대규모 부대의 이동에 불리하다. 당시 조군은 이미 정경구를 선점하여 지세를 이용해 여유롭게 적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병력도 많아 우위와 주도권을 확보한 상태였다. 반면 한신은 겨우 1만여 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모두 신병으로 구성되어 천 리를 행군한 후라 인마가 지쳐 있었고, 열세와 수세적인 입장에 놓여 있었다.

조군의 모사 이좌거는 진여에게 다음과 같이 건의했다. "정면에서 성벽을 굳게 지키며 싸우지 말고, 일부 병력을 보내 적의 후방으로 돌아가 한군의 보급로를 차단함으로써 한신이 '앞으로는 싸울 수 없고, 뒤로는 물러날 수도 없으며, 들에서 식량을 약탈할 수도 없게' 한 후, 전후에서 협공하여 한신을 한 번의 전투로 생포하자." 그러나 진여는 정면 공격을 숭상하는 고전파 군인으로서 '의로운 군대는 기만이나 기이한 계책을 쓰지 않는다'는 교조에 얽매여 있었으며, 한신의 병력이 적고 피로하다고 판단하여 피해서 싸우지 않아야 한다고 여겼다. 그는 이좌거의 건의를 거부하고, 병서에 나오는 '십 배 많으면 포위하고, 두 배 많으면 싸운다'는 공식을 고집스럽게 따랐다.

한신은 심오한 계략을 갖고 있었으며, 양측 병력의 현격한 차이를 알고 있어 강행 공격을 하면 반드시 실패할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정경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진을 치고 지형과 조군의 배치를 반복적으로 분석했다. 한신은 이좌거의 계책이 채택되지 않았으며, 조군의 주帥 진여가 적을 경시하고 신속한 승리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 즉시 병력을 정경구에서 30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시켜 진을 쳤다. 한밤중에 한신은 2천 명의 경기병을 뽑아 각자 한군의 붉은 깃발을 들고, 밤중에 산길을 따라 조군 진영의 측후방으로 돌아가 매복시켰다. 다음 날 조군이 진영을 비우고 출격할 때를 노려, 조군 진영이 텅 빈 틈을 타 돌입하여 조군의 깃발을 뽑고 한군의 깃발을 꽂게 할 계획이었다.

이후 한신은 병사들에게 식사를 하도록 명령하며 장교들에게 말했다. "간단히 먹고, 내일 아침 조나라를 무너뜨린 후 든든히 먹자." 장교들은 반신반의했지만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한신은 곧바로 북을 치고 대장의 깃발을 세우며 정경구로 진군했다. 그는 말했다. "조군이 이미 유리한 지형을 선점하고 요새를 쌓아 기다리고 있으니, 대장의 깃발을 보지 못하면 내가 아직 후군에 있다고 의심하여 공격하지 않을까 두렵다."

한군이 정경구에 접근했을 때, 한신은 기병 정찰조조차 파견하지 않고 즉시 중군 주력을 모두 하천 뒤로 내보내 배수진을 치도록 명령했다. 진영 위의 조군은 한군이 물을 등지고 진을 치고 후퇴할 길이 없다는 것을 보고, 한신이 병법을 모른다고 비웃었다. 잠시 후, 하늘이 완전히 밝아오자 한군 진영에서 먼지가 일며, 격렬한 북소리와 함께 일렬의 깃발이 나타났고, 한신은 여러 장교들의 호위를 받으며 말을 타고 전선으로 나섰다. 진여는 한신의 병력이 적고 자신이 유리한 지형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고, 경기병과 정예 병사들을 이끌고 벌집처럼 몰려가 한신을 생포하려 했다. 한신은 깃발과 북을 버리고 신속히 진영 안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했다. 진여는 이 광경을 보고 즉시 전군을 출격시켜 한군 진영을 직격했다. 한군은 강을 등지고 싸우며 후퇴할 길이 없었기 때문에 모두 용감하게 싸웠고, 누구나 앞장서려 했다. 양측은 반나절 이상 치열하게 싸웠지만 조군은 여전히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이때 조군 진영은 텅 비어 있었고, 한신이 미리 매복시켜 둔 2천 명의 경기병이 곧장 진영으로 돌입하여 조군 진영 곳곳에 한군의 붉은 깃발을 꽂았다. 격렬한 전투 중이던 조군은 갑자기 진영 뒤에 한군 깃발이 가득 꽂혀 있는 것을 보고 진형이 즉시 어지러워졌다. 한신은 이 틈을 타 반격을 개시하여 20만 조군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조군 통수 장군 진여를 참살하고 조왕 희를 생포했다.

전투 후, 한군 장병들은 잔치를 벌이며 서로 축하했고, 모두 한신에게 물었다. "장군께서 우리에게 물을 등지고 진을 치라고 하셨는데, 이는 병법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습니까?" 한신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병법에 이미 있지 않습니까? '죽을 자리에 놓이면 살아나고, 망할 자리에 놓이면 살아남는다.' 만약 내가 생로를 주었다면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겠습니까?" 장군들은 비로소 배수진의 승리 비결을 깨닫고 한신에게 매우 존경을 표했다.

정경 전투에서 한신은 1만여 명의 열세 병력으로 기병과 정병을 병용하고, 배수진을 치며 유연한 전술을 사용하여 20만 조군을 일격에 무너뜨리고 항우가 봉건한 조나라를 멸망시켰으며, 중국 군사사에 빛나는 한 장을 써내려갔다. 당나라 시인 왕유는 『종군행』에서 정경 전투를 생동감 있게 묘사하며 한신의 뛰어난 지략과 지휘 능력을 찬양했다. "갑옷 입고 오래 군무를 보았으나, 운무 속에서 진형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오늘 한신을 경배하니, 성안의 목이 며칠 안에 베일 것이다."

분류
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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