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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왕의 죽음

By 故事大全 , 17 August 2025

대우는 하나라의 개국 황제로서, 이 왕조는 400년 이상 지속되었다. 하나라의 마지막 황제는 하걸로, 역사상 유명한 폭군이었다.
하나라를 대신해 등장한 상나라(은나라)는 중국을 약 600년 이상 지배했으나, 은주왕이 다스리던 시기에는 이미 왕조의 종말이 가까워져 풍우에 흔들리는 위태로운 상태에 있었다.
은주왕 역시 역사상 유명한 폭군이었으며, 국가의 중대사를 돌보지 않고 매일 사치스럽고 방탕한 생활을 하며 취한 듯한 삶을 살았다.
어느 해, 상나라의 속국인 소국(蘇國)이 은주왕에게 미녀 다키를 바쳤고, 은주왕은 특히 다키를 총애했다. 다키는 성격이 기이한 여인이었는데, 은주왕은 다키의 기쁨을 얻기 위해 사람을 시켜 커다란 연못을 파고 술로 가득 채우고, 연못 주위에 나무를 심어 가지마다 고기 조각을 매달게 했다. 그 후 수많은 젊은 남녀를 불러 술 연못에서 목욕을 시키며 서로 쫓아다니며 놀게 하고, 누구든지 연못에서 몸을 날려 올라가 가지에 매달린 고기를 입으로 물어내는 자에게는 상을 주도록 했다. 이것이 역사상 '술연못과 고기 숲(酒池肉林)'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다키는 이런 놀이를 보는 것을 좋아했고, 볼 때마다 웃었다. 은주왕은 다키의 웃음을 얻기 위해 거의 매일 이런 놀이를 열었다.
은주왕은 백성들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수도 조가(朝歌)에 거대한 건물을 지었는데, 이곳은 전국 각지에서 빼앗아온 금전을 전용으로 저장하는 곳이었다. 이 거대한 건물을 '녹대(鹿台)'라고 불렀다. 또한 백성들로부터 빼앗아온 곡물을 저장하기 위한 커다란 창고도 지었다.
백성들은 물불에 빠진 듯한 고통 속에서 살아가며, 결국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반란이 생기면 은주왕은 군대를 보내 진압했고, 백성들은 무리를 지어 이웃 나라로 도망쳐 생존을 찾아 나섰다. 이로 인해 이웃 나라들이 점차 강성해졌다.
은주왕은 자신의 신하들에게도 잔혹한 탄압 수단을 사용했다. 누구든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목이 잘렸다. 그는 다키가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다키를 즐겁게 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형기를 발명했다. 이 형기는 빈 공간이 있는 동기둥으로, 사형을 당할 사람을 이 동기둥에 묶은 후 빈 공간 안에 불을 피워 동기둥을 달구고, 묶인 사람이 고통스럽게 발버둥치다가 결국 살아서 불에 타 죽게 되는 것이었다.
다키는 형벌을 받는 사람이 죽기 전 겪는 고통스러운 몸부림을 보는 것을 좋아했고, 이 광경을 볼 때마다 웃었다. 은주왕은 다키가 항상 웃도록 하기 위해 매일 사람을 죽일 구실을 찾아 다키를 즐겁게 했다. 이 잔혹한 형벌을 '포락(炮烙)'이라고 불렀다.
은주왕의 신하 중 정직한 신하 매백(梅伯)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은주왕이 '포락'을 사용해 사람을 죽이는 것에 매우 불만을 품었다. 그는 자신의 위험을 돌보지 않고 은주왕에게 이 잔혹한 형벌을 폐지할 것을 간언했다.
은주왕은 매백의 간언을 듣지 않을 뿐 아니라, 웃으며 매백에게 말했다. "사실 '포락'은 그리 잔혹하지 않으며, 죽는 사람도 그리 고통스럽지 않아. 믿지 못하겠다면 네가 직접 한번 시험해보는 게 어때?" 라고 말한 후 표정을 굳히며 손을 휘두르며 궁전의 경비병에게 명령해 창으로 매백을 빈 동기둥 가까이 밀어넣게 하고, 매백의 옷을 벗긴 후 빈 동기둥에 묶어버렸다. 매백은 달궈진 동기둥에 뜨거운 열기를 느끼며 비명을 질러댔다.
은주왕이 매백을 보며 말했다. "어때, 네가 생각했던 것만큼 잔혹하지 않지?" 라고 말한 후 다시 매백을 풀어주라고 명령했다.
매백은 은주왕에게 말했다. "대왕, 포락은 너무나 잔혹합니다. 군주란 어진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이렇게 하는 것은 죄악이 극에 달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백성들이 모두 일어나 대왕을 반역할 것이며, 상나라의 천하는 대왕의 손에 망하게 될 것입니다."
은주왕은 이 말을 듣자 화가 나서 손을 휘두르며 경비병에게 매백을 다시 동기둥에 묶어 불을 지펴 달구라고 명령했다.
매백은 은주왕에게 말했다. "대왕, 제게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늙은 신하가 포락의 형벌을 받는 마지막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늙은 신하도 죽어도 원망이 없습니다."
이때, 조정의 신하들도 모두 함께 무릎 꿇고 매백을 위해 빌었다.
은주왕은 신하들에게 말했다. "좋다, 너희 모두의 체면을 봐서 '포락'의 형벌은 면제하고 목을 베어, 그 후 고기장으로 다져서 나누어 먹게 하겠다. 너희 모두 이 반쯤 익은 고기장의 맛을 보고 매백의 교훈을 기억하며, 앞으로 함부로 나를 비방하지 말라."
경비병은 매백을 죽인 후 그 시신을 고기장으로 다져 접시에 담아 신하들에게 나누어 먹게 했다. 은주왕 앞에서 신하들 중 누가 감히 먹지 않겠는가? 눈을 감고 사람 고기장을 삼켜야 했다.
매백의 죽음은 조정의 신하들을 무서워하게 만들어, 더 이상 누구도 은주왕을 간언할 사람이 없게 되었다.
주변의 속국들이 상나라에 복종하도록 하기 위해, 은주왕은 기창(姬昌), 구후(九侯), 옥후(鄂侯) 세 제후의 수장들을 수도로 불러들여, 이 세 사람이 전국 각지의 제후들을 관리하도록 했다. 이 세 사람의 관직을 '방백(方伯)'이라고 불렀다. 국내에 반란을 일으키는 제후가 있으면, 해당 '방백'이 군대를 이끌고 진압하는 것이었다.
세 '방백'이 가족과 함께 수도에 들어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날 은주왕이 구후의 집에 놀러갔다가 구후의 딸이 아름답다는 것을 보고, 구후에게 딸을 궁중에 보내 자신을 섬기는 후궁으로 삼게 하라고 암시했다.
구후는 거절할 수 없어 딸을 궁중에 보냈다. 그러나 구후의 딸은 이미 은주왕이 어리석은 군주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궁중에 들어간 후에도 은주왕을 무시하며 항상 슬픈 표정을 지었다. 어느 날, 은주왕은 반드시 웃으라고 명령했고, 웃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했다. 그녀는 은주왕에게 말했다. "저를 죽여 주세요. 대왕 곁에 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습니다."
은주왕은 화가 나서 그녀를 죽였다.
구후는 딸의 죽음을 알게 되자 큰 소리로 울었다. 그런데 이 일을 은주왕이 구후 곁에 심어놓은 측근 범중(費仲)이 알게 되어 즉시 은주왕에게 밀고했다. 은주왕은 구후, 옥후, 기창 세 '방백'을 조정에 소환했다. 기창은 이번 소환의 위험을 예감하고 병이 났다고 핑계를 대며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구후, 옥후와 여러 신하들이 조정에 나갔으나, 금전(金殿)의 분위기는 매우 긴장되어 모두가 큰 재난이 닥칠 것을 느꼈다.
은주왕은 구후에게 말했다. "네 딸은 내가 죽인 것이다. 네가 우는 것은 나에 대한 불만이 아니냐?"
구후는 변명했다. "대왕, 딸을 잃고 울음을 터뜨리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은주왕은 말했다. "인간의 본능을 안다면, 군신지례를 잊었단 말이냐? 보아하니 너는 군주를 눈에 두지 않는구나. 사람을 불러서 끌고 가 처형하라!"
옥후는 이 말을 듣고 즉시 무릎을 꿇고 구후를 위해 빌었다. "대왕, 구후가 딸을 위해 우는 것은 정말 인간의 본능입니다. 늙은 신하의 체면을 봐서 구후의 목숨을 살려주십시오......"
은주왕은 옥후의 말을 듣지 않을 뿐 아니라,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반역이로구나, 모두 반역이로구나! 네가 어찌 반역자를 위해 빌 수 있느냐? 끌고 가 함께 처형하라!"
은주왕은 구후와 옥후를 죽인 후, 그 시신을 '육포(肉脯)'로 만들고 '육장(肉醬)'으로 다져, 이를 서백 기창에게 먹게 하라고 사람을 보냈다.
서백 기창은 궁중의 사신 앞에서 '육포'와 '육장'을 먹으며 사신에게 말했다.
"신 기창, 대왕의 하사품에 감사드립니다. 구후와 옥후는 대왕을 반역하여 죄를 받은 것입니다......"
궁중의 사람이 떠난 후, 서백 기창은 두 친구의 비참한 죽음을 위해 울었으며, 동시에 자신이 재난을 면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 후 기창은 매일 병을 가장하며 집에 머물러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해도 구후와 옥후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비밀리에 사람을 자신의 나라 주(周)로 보내 아들 기발(姬發)과 신하 혼요(閏夭)에게 구출 방법을 마련하도록 지시했다.
기창의 예상대로, 곧 은주왕은 기창에게 독수를 썼으나, 즉시 살해하지는 않고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었다.
서백 기창의 아들 기발은 아버지가 투옥된 소식을 듣고 즉시 나라의 모든 재산을 동원해 좋은 말과 보석, 옥기를 사들였고, 많은 미인을 골라 주나라의 신하 혼요를 보내 은주왕에게 바치며 충성을 맹세했다.
은주왕은 선물을 받고 혼요의 청을 받아들여, 서백 기창을 감옥에서 풀어주었다. 기창은 출옥한 당일 혼요와 함께 주나라로 돌아갔다.
서백 기창이 주나라로 돌아온 후 즉시 군대 훈련을 강화하고 농목업을 발전시켜 국가가 금세 강성해졌으며, 주나라의 이웃 나라들도 차례로 주나라에 복속되었다.
주나라는 점점 강해져 상나라와 맞서 싸울 만한 힘을 갖추게 되었다. 그 무렵 상나라 동부의 일부 부족들이 상나라의 국력이 쇠약해진 것을 보고, 계속 상나라를 침범하며 사소한 전쟁을 일으켰다. 상나라는 서쪽에 강한 주나라의 위협이 있고, 동쪽에는 일부 부족의 침입이 있어 동서 양면에서 위협받는 위험한 상황에 놓였다.
은주왕은 국내 형세를 안정시키기 위해 국내 모든 병력을 동원하여 동부 일부 부족들에게 공격을 개시했다. 은주왕은 원래 서부의 주나라와 약속했었다. 상나라가 동부 전쟁을 개시할 때 주나라는 반드시 중립을 지키고 병력을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은주왕이 동부에서 전쟁을 벌이는 동안, 주나라는 즉시 상나라에 공격을 개시하여 상나라를 양면 전쟁의 위기에 빠뜨렸다. 이때, 서백 기창은 이미 죽었고, 그 아들 기발이 아버지의 위패를 들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는 깃발을 들고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진격했다.
은주왕의 숙부 비간(比干)은 형세가 위급하다고 느끼고 목숨을 걸고 은주왕에게 동부 전장의 병력을 빨리 철수시켜 황하를 지키고, 주나라의 군대가 강을 건너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간청했다.
은주왕은 마지못해 비간의 건의를 받아들여 동부 전장의 일부 병력을 철수시켰다. 그러나 상나라의 수비병이 황하 동안에 도착하기도 전에, 서안의 주나라는 병력을 철수했으며 사신을 보내 은주왕에게 말했다. "황하 진군은 단지 군사 훈련일 뿐이니, 은주왕께서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이때, 동부 전장에서 일부 병력이 철수되었기 때문에 동부의 형세가 다시 긴장되었다. 은주왕은 즉시 황하 방어를 위해 철수한 병력을 다시 동부 전장으로 증원하라고 명령했다.
비간은 은주왕에게 말했다. "안 됩니다, 대왕! 주나라의 철수는 우리를 속이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수비병이 돌아서는 순간 그들은 즉시 황하를 건너게 되고, 그렇게 되면 상나라는 망하게 됩니다."
은주왕은 화가 나서 비판하며 말했다. "너는 전에 주나라가 황하를 건넌다고 했으니, 나는 네 말을 듣고 병력을 보내 황하를 지켰다. 지금 주나라 군대는 이미 돌아갔고, 황하 양안은 평온하니, 너는 아직도 나에게 동부 전장에 증원하지 말라고 하느냐? 도대체 무슨 마음을 품고 있느냐?"
비간은 말했다. "저는 대왕을 따라온 지 오래인데, 제가 어떤 마음인지 대왕이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이 말에 은주왕은 격노하여 말했다. "나는 정말로 네 마음이 무엇인지 모른다. 너는 충신이라면, 내게 네 마음을 보여주어라!"
은주왕의 명령에 따라 경비병이 비간을 땅에 눕혀 날카로운 칼로 그의 가슴을 가르고, 피로 물든 심장을 꺼냈다.
은주왕이 비간을 죽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백 기창의 아들 주무왕이 대군을 거느리고 황하를 강제로 건너 상나라 수도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은주왕은 동부 전장의 병력을 불러 수도를 지키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절박한 상황에서 전쟁 포로들을 모아서, 감옥에서 죄수들을 풀어내 임시로 부대를 편성해 주나라 군대와 싸우게 했다. 이 무리잡힌 군대는 본래 전투력이 없었고, 이미 은주왕을 미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결정적인 순간에 누가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는가? 전투 중 그들은 줄줄이 반기를 들고, 자신들을 호송하던 궁전 경비대와 싸우며 오히려 주나라 부대의 선봉이 되었다. 이 전투에서 상나라 군대는 완전히 붕괴되어 크게 패배했다.
수도 조가로 진격한 주무왕을 앞에 두고, 은주왕은 자신의 멸망이 피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보물을 저장한 녹대에 무릎을 꿇고 큰 불을 지펴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함께 태워 없애려 했다. 결국 불은 이 폭군의 생명만을 끝내고, 녹대에 저장된 보물과 옥기는 그대로 남았다. 이렇게 해서 이 재산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이로써 상나라의 중국 지배는 끝나고, 새로운 왕조—주나라가 시작되었으며, 그 첫 번째 군주는 바로 주무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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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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