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 눈에 그는 거만하고 고집스럽고, 심지어 폭력적이고 잔혹했다. 그러나 그는 정신이 맑고 의지가 확고하여 초인적인 침착함과 인내력으로 자신의 꿈을 실현했다. 그는 진정한 '철혈(鐵血)' 영웅이었다.
독일 근대사에서 오트 프리드리히 빌헬름 폰 비스마르크(이하 비스마르크)를 언급하면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인상을 떠올린다. 체구가 건장하고 거만하며 고집이 세고, 오만하고 무례하며 성격이 거칠고, 폭력적이고 잔혹하다. 피터 대제와 나폴레옹처럼, 비스마르크는 생전에 사람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전해지는 인물이었다. 그는 '철혈'의 수단을 동원하여 독일의 통일 대업을 완수했으며, 독일을 세계 강국으로 역사 무대에 올려놓았다.
담배 피우기로 오스트리아의 권위에 도전하다
비스마르크는 35세에 프로이센 국회의 대의사로 재직하게 되었는데, 이는 그의 정치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1851년 5월 11일, 당시 36세의 비스마르크는 새로운 대표로서 프랑크푸르트 연방의회에 입성했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각 주(州) 가운데 가장 강력한 세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비스마르크가 대표하는 프로이센은 상대적으로 약세였다. 연방의회에서 그는 오스트리아의 일체를 무시하는 태도에 매우 불만을 품고, 오스트리아인들에게 도전할 기회를 찾고 있었다.
의회에는 관례적으로, 회의 의장인 오스트리아인만이 담배를 피울 권리가 있다는 비공식적인 관습이 있었다. 비스마르크는 이러한 관행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한 회의에서 의장이 시가를 꺼내 피우려 하자, 그는 즉시 자신의 담배를 꺼내 의장에게 불을 빌려 피우기 시작했다. 이렇게 당당히 피우는 행동을 통해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대등한 위치에 있음을 표명한 것이다. 이 행동은 의장과 다른 주 대표들의 눈길을 확 끌었다.
비스마르크는 오스트리아를 격파하고 독일을 통일하는 꿈을 늘 꾸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처럼 전쟁을 좋아하는 인물이 국회에서 수차례 평화를 주장했다. 사실 이것이 그의 진정한 의도는 아니었다. 그는 말했다. "전쟁의 결과에 대해 냉정한 인식 없이 전쟁을 강행하는 정치인은 스스로 죽음을 택해야 한다! 전쟁이 끝난 후, 밭이 재로 변한 농민들의 고통을 감당할 용기가 있는가? 신체장애와 가족의 이산의 슬픔을 견딜 용기가 있는가?" 국회에서 그는 오스트리아의 행동을 옹호했는데, 이는 평소의 그의 입장과 정반대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에 속았다. 그러나 그가 총리가 되자마자 독일 국민들에게 즉시 "외교관에게 있어 가장 큰 위험은 환상을 품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곧바로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프랑스의 외교관 그라몽은 비스마르크를 세심하게 관찰하며 그의 변덕스럽고 유연한 성격을 깊이 있게 드러냈다. "그의 눈은 결코 웃음을 띠지 않으며, 말할 때는 항상 이를 악물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언행은 비밀에 대해 일부러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는 듯하며, 마치 그가 사물의 자연스러운 발전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든지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암살 미수 후 집으로 걸어가다
1862년 9월, 비스마르크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전기를 맞이했다.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 국왕이 그를 프로이센 총리 겸 외무대신에 임명한 것이다. 이로써 그는 독일 통일의 대업에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되었으며, '천고의 명재상'이 되었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비스마르크는 좌충우돌하며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1866년 4월 8일, 그는 이탈리아와 동맹을 맺고 언제든지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벌일 준비를 했다. 그러나 모두가 비스마르크를 비난하며, 만약 무력 정책이 실패한다면 그는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스마르크는 국왕 앞에서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자신이 널리 저주받고 있다는 것을 안다. 사람들이 말하듯이 운명은 무상하다. 나는 내 목을 걸고, 비록 단두대에 올라도 끝까지 도박할 것이다. 프로이센과 독일은 원래 상태를 유지할 수 없으며, 둘 다 (무력의) 이 길을 가야 한다. 다른 길은 없다!"
민중의 반전 정서는 마침내 극한에 달했다. 5월 7일, 비스마르크가 집으로 돌아가던 중 갑자기 뒤에서 두세 발의 총성이 들렸다. 그는 재빨리 몸을 돌려 한 청년이 자신을 향해 총을 쏘는 것을 보았다! 비스마르크는 곧장 뛰어들어 한 손으로 청년의 오른손목을, 다른 손으로는 목을 붙잡았다. 암살범은 왼손으로 총을 집어들고 비스마르크에게 두 발을 더 쏘았다. 한 발은 비스마르크의 외투를 맞췄고, 또 한 발은 그의 갈비뼈를 맞췄다. 그때 한 길손과 두 명의 병사가 달려와 암살범을 붙잡아 비스마르크는 위험에서 벗어났다.
비스마르크의 갈비뼈는 아팠지만, 그는 집까지 걸어가기로 결심했다. 부인 요한나는 손님들과 식사를 하고 있었다. 비스마르크는 그들을 방해하지 않고, 서재로 들어가 빌헬름 1세에게 간단한 보고서를 작성한 후 식당으로 들어가 부인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이야기하듯 말했다. "자기야, 무서워하지 마. 누군가 나에게 총을 쐈지만, 하나님께 감사해, 난 아무 일 없어!" 바로 이러한 침착함과 인내력으로 비스마르크는 독일 통일의 마지막 단계까지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