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 전문가 앞에서 재주를 자랑하는 것을 비유한다. 주로 겸손한 표현으로 사용된다.
["채석강가 흙더미 하나, 이백의 이름 천고에 높으니
왕래하는 시 한 편, 노반문전 농대부(魯班門前弄大斧)"]
이 시는 명나라 매지환(梅之渙)이 이백 묘소에 지은 시이다. 이백(李白, 701-762)은 자가 태백(太白)이며, 술을 좋아해 '이철선(李謫仙)'이라 불린 당나라의 위대한 시인이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신화적인 전설들이 많다. 예를 들어, 이백이 말년에 동정호, 월양, 금릉(현 난징) 등을 여행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그의 배가 채석강가(采石江邊, 지금의 안후이성 당도현에 위치하며 장강 북안에 접해 있음)에 정박했다. 밤이 되자 달빛이 낮처럼 밝았고, 이백은 배 위에서 달을 보며 술을 마시다 만취한 상태에서 물속의 달 그림자를 보고 손을 뻗어 잡으려다 강에 빠져 죽었다는 전설이다. 더욱 신비로운 이야기는, 이때 갑자기 강에 폭풍이 일며 거대한 고래가 머리를 치켜세우고 물 밖으로 튀어오르고, 선동 두 명이 깃발을 들고 나타나 이백을 고래 등에 태우고 음악을 선두로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설들은 물론 믿을 수는 없지만, 채석 지역에는 이러한 이야기로 인해 많은 명소들이 생겨났다. 이백의 무덤뿐만 아니라 철선루(謫仙樓), 족월정(捉月亭) 등도 있고, 수많은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문장 실력도 부족하면서 풍류를 흉내 내려는 관광객들이 이백 묘소에 어설픈 시를 지어 낙서하는 경우도 있어 매우 우스꽝스럽다. 매지환의 이 시는 바로 이러한 관광객들을 조롱한 것이다. 그는 위대한 시인의 묘소에 어설픈 시를 낙서하는 행위가 마치 "노반(魯班) 문전에서 거대한 도끼를 휘두르는 것"과 같다고 보았으니, 이는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노반(魯班)은 성은 공수(公輸), 이름은 반(般)이라고 하며, 전국시대 노나라 사람으로 노반(魯般)이라고도 불린다. 정교한 기구를 만들기에 능한 명장으로 '교인(巧人)'이라 불렸다. 민간에서는 오랫동안 목수들의 시조로 숭배되어 왔다. 누가 감히 노반 앞에서 도끼 사용 기술을 자랑하겠는가? 즉, 큰 전문가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는, 지나치게 비굴하지 못한 어리석은 행동을 '노반문전 농대부(魯班門前弄大斧)'라 하며, 줄여서 '반문농부(班門弄斧)'라 한다. 속담에서 말하는 '관공(關公) 앞에서 대도(大刀)를 휘두른다'는 표현과 의미가 거의 같다.
당나라 문학가 유종원(柳宗元)은 《왕씨 백중창화시(為王氏伯仲唱和詩)》의 서문에서 "반(班)과 영(郢)의 문전에서 도끼를 들다니, 이는 곧 후안(厚顏)할 뿐이다."라고 하였다. (영(郢)은 또 다른 고대의 도끼 명수를 가리키며, '부정(斧正)' 참조. '강안(強顏)'은 후안한 얼굴을 의미한다.) 이로 보아 '반문농부'라는 이 관용어는 명나라 매지환의 시에서 유래했을 뿐 아니라, 당나라 시대부터 이미 그 형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관용어는 때때로 겸손한 표현으로도 사용되어, 전문가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뽐내지 못하겠다는 뜻을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