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 말기, 수나라 문제 양견은 주변의 남진(南陳)과 북제(北齊)를 멸망시키고 수나라를 건국하였다. 당시 남방에는 여러 작은 국가들이 공존하고 있었는데, 수도가 건강(建康, 오늘날의 난징)인 진나라가 그 중 하나였다. 수나라는 오랫동안 남방의 작은 국가들을 노리며, 언제든지 중국 전역을 통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덕언(徐德言)은 진나라 황제 진서보(陳叔寶)의 시종관으로, 황제의 동생 낙창공주(樂昌公主)와 결혼하였다. 두 사람은 정이 깊고 서로를 매우 사랑하였다. 그러나 당시 진나라 정권은 부패하였고, 천하의 통일은 이미 피할 수 없는 대세였다. 서덕언은 언젠가 반드시 나라가 멸망할 운명에 처할 것임을 예견하고, 매우 근심하였다.
어느 날, 그는 근심 가득한 얼굴로 아내에게 말했다. "머지않아 전란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그때 나는 황제를 보호해야 하니, 우리 부부는 헤어질 수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살아만 있다면 다시 만날 기회는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미리 어떤 물건을 남겨, 장래 재회할 때의 증거로 삼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에 서덕언은 둥근 청동 거울 하나를 가져와 반으로 깨뜨렸다. 반은 자신이 간직하고, 나머지 반은 아내에게 주며 잘 보관하라고 당부한 후, "우리가 헤어진 후라면, 해마다 음력 정월 보름날에 이 반쪽 거울을 시장에 가져가 팔게 부탁하세요. 내가 살아 있다면 반드시 그 소식을 듣고 찾아가, 내 반쪽 거울을 증거로 삼아 당신과 재회할 방법을 찾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중국 북방을 통일한 수나라 문제 양견은 진나라의 수도 건강을 공격하기 위해 실제로 군대를 파견하였고, 작은 진나라는 멸망하였으며, 진나라 왕은 살해되고, 서덕언은 도망쳐야 했다. 수나라 문제는 진나라 정복에 공을 세운 자들에게 보상을 하였고, 포로가 된 낙창공주는 대신 양소(楊素)에게 첩으로 하사되었다.
도망치던 서덕언은 아내가 수나라의 수도 대흥(大興, 오늘날의 산시성 시안)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먼 길을 헤치며 그곳에 도착하여 아내의 정확한 행방을 수소문하였다. 깊은 밤이 되면 항상 반쪽 거울을 꺼내, 아내와 함께했던 아름다운 시간들을 떠올렸다. 그의 아내 낙창공주는 양소의 관저에서 우아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마음속 깊이 남편을 늘 그리워하며, 자주 반쪽 거울을 어루만지며 지난날을 추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