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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치를 뽑아 새 기치로 바꾸다 (발치역치)

By 故事大全 , 28 August 2025

'기치를 뽑아 새 기치로 바꾸다(拔帜易帜)'라는 이 속담은 어떤 것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거나 물리치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 속담은 『사기(史記)』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서 유래하였다. "한밤중에 군사를 출동시키며, 경기병 이천 명을 뽑아 각자 붉은 깃발 한 개씩을 들게 하고, 비밀로 산길을 돌아 조군을 바라보게 하며 명령하기를, '조(趙)나라가 우리가 도망가는 것을 보면 반드시 영채를 비우고 우리를 쫓아올 것이다. 그때 빠르게 조군 진영 안으로 들어가 조나라 깃발을 뽑아내고 한(漢)나라 붉은 깃발을 세워라.'" 라고 하였다.

한신(韓信)은 유방(劉邦)에게 대장군으로 임명된 후, 한나라 군대를 이끌고 위(魏)나라와 대(代)나라를 정복하였다. 그 후 장이(張耳)의 도움을 받아 수만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동쪽으로 경형(井陘) 고개를 넘어 조(趙)나라를 공격하였다. 조왕과 주장 진여(陳餘)는 경형 고개 입구에 이십만 대군을 집결시켜 맞서 방어하였다.

모사 이좌거(李左車)는 진여에게 세만 명의 군대를 뽑아 소로(小路)로 출발하여 한군의 보급장비와 식량을 예상 밖으로 절단하고, 한군 선봉대가 경형에 도착하더라도 전투를 벌이지 말 것을 건의하였다. 이렇게 하면 열흘도 채 안 되어 한신과 장이의 머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진여는 학자 출신으로 간사한 계책이나 기이한 전술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한신의 병력이 고작 수천 명에 지나지 않으며, 천 리를 행군한 끝에 이미 매우 지쳐 있다고 판단하여 직접 공격할 수 있다고 여겼고, 따라서 이좌거의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신의 부하들이 이 소식을 알아낸 후 매우 기뻐하며, 안심하고 동쪽 경형 고개를 향해 진군하여 경형 고개 입구에서 30리 떨어진 곳에 도착하자 휴식을 취하라고 명령하였다. 한밤중에 그는 이천 명의 경기병을 뽑아 각자 붉은 깃발을 들고, 비밀로된 길을 통해 경형 고개 뒷산에 숨어 두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했다. "내가 별도의 군대를 보내 조군과 맞서 싸우다가 가짜로 패퇴할 것이다. 그러면 조군은 반드시 영채를 비우고 전력으로 추격해 올 것이다. 그 틈을 타 빠르게 조군 진영 안으로 들어가 조군 깃발을 뽑아내고 우리 한나라 붉은 깃발을 세워라."

이어 한신은 또 만 명의 군대를 보내 물을 등지고 진을 치게 하였다. 조군은 한군이 병법상 가장 금기시하는 '등수진(背水陣)'을 펼친 것을 보고 모두 크게 웃으며, 한군이 스스로 퇴로를 끊었다고 여겼다.

새벽이 밝자, 한신이 이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경형 고개 입구로 진격하자, 조군은 즉시 영문을 열고 맞서 싸웠다. 한동안 싸운 후, 한신과 장이는 한군 병사들에게 깃발과 북을 버리고 물가 쪽으로 후퇴하라고 명령하였다. 한군은 물가의 진지까지 물러나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지자, 어쩔 수 없이 필사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때, 산 뒤에 숨어 있던 이천 명의 한군 기병들이 조군 진영이 무방비 상태임을 틈타 빠르게 진영 안으로 돌입하여 조군 깃발을 빠르게 뽑아내고 한나라 붉은 깃발을 세웠다. 한편 물가에서 싸우던 조군은 '등수일전(背水一戰)'을 벌이는 한군의 치열한 저항을 만나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진영으로 되돌아가려 했으나, 진영 안이 모두 한군의 붉은 깃발뿐인 것을 보고 조왕이 이미 한군에게 붙잡힌 것으로 여겨, 즉시 군심이 무너져 각자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이어 한군이 양면에서 조군을 공격하여 결국 주장 진여는 죽임을 당하고, 조왕은 살아서 붙잡히고 말았다.

분류
성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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