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어인 '벽돌을 던져 옥을 불러온다(pāo zhuān yǐn yù)'에서 '던지다(pāo)'는 던지거나 투척한다는 뜻이다. 벽돌을 내던져 옥을 끌어온다는 뜻으로, 자신의 피상적이고 미숙한 의견이나 글을 내놓아 타인의 훌륭한 견해나 훌륭한 작품을 이끌어내는 겸손한 표현으로 자주 사용된다. 기자(墼子)란 굳히지 않은 생벽돌, 즉 흙벽돌을 말한다.
이 성어는 송나라 석도원(釋道原)의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10, 조주동원종심선사(趙州東院從諗禪師)에서 유래한다. "대중이 저녁에 선문답을 하자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오늘 밤에 내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서 보이라.' 하셨다. 그때 한 스님이 나와 예를 올렸다. 종심(諗)이 말하기를 '지금까지 벽돌을 던져 옥을 불러왔는데, 오히려 기자 하나를 불러왔다.'고 하였다."
당나라의 고승 종심 선사는 조군(趙郡)의 관음원(觀音院)을 오랫동안 주석하였다. 전해 오기에는 그가 제자들의 참선 수행에 대해 극도로 엄격하게 요구하여, 모두가 조용히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신을 집중하며 외부의 어떠한 방해도 일절 받아들이지 않아야 하며, 망념을 멈추고 마음과 몸이 움직이지 않는 삼매경에 이르기를 요구하였다. 어느 날, 스님들이 저녁에 모였을 때 종심 선사는 일부러 "오늘 밤에 내 말을 듣고 깨달은 사람이 있으면 나서 보이라."라고 말하였다.
이때 제자들은 모두 다리를 꼬고 바르게 앉아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히며 꿈쩍도 하지 말아야 했다. 그런데 딱 한 명의 어린 스님이 성급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깨달은 사람이라 여기고 나와 예를 올렸다. 종심 선사가 그를 흘끗 쳐다보며 천천히 말하기를, "방금 벽돌을 던져 옥을 불러왔더니, 오히려 벽돌보다 못한 흙덩이 하나를 불러왔다!"고 하였다.
또 다른 '벽돌을 던져 옥을 불러온다'는 이야기가 있다. 『역대시화(歷代詩話)』, 『담증(談證)』 등의 기록에 따르면, 당나라 시인 조고(趙嘏)는 명구인 '장적일성인의누(長笛一聲人倚樓, 긴 피리 한 번 울리니 사람이 누각에 기대다)'로 대시인 두목(杜牧)의 칭찬을 받았고, 사람들은 이에 따라 조고를 '조의누(趙倚樓)'라 불렀다. 당시 또 다른 시인 상건(常建)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늘 조고의 시재를 매우 존경하였다. 상건은 조고가 오지(吳地)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조고가 반드시 영암사(靈巖寺)를 둘러볼 것이라 예상하고 미리 영암사에 도착하여 절 앞 산담에 두 줄의 시를 짓고, 조고가 이를 보고 두 줄을 더 붙여 한 수의 완전한 시를 완성하기를 기대하였다. 과연 조고가 영암사를 둘러보다가 담에 적힌 두 줄의 시를 보고 시흥이 북받쳐 자연스럽게 뒤에 두 줄을 덧붙여 완전한 절구를 완성하였다. 상건의 시는 조고의 시만큼 좋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못난 시로 조고의 훌륭한 구절을 이끌어낸 것으로, 후세 사람들이 이를 '벽돌을 던져 옥을 불러온다'라고 부르게 되었다. 사실 상건과 조고는 동시대 인물이 아니며, 활동 시기가 100년 이상 차이 나기 때문에 시를 이어 쓴 이야기는 신빙성이 없다. 다만 이 이야기가 매우 유명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성어 '벽돌을 던져 옥을 불러온다'의 기원 중 하나로 인정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