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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파육

By 故事大全 , 24 August 2025

절강성의 도시와 시골에는 송나라의 대문호 소식(蘇軾)과 관련된 유명한 요리가 하나 있는데, 바로 '동파육(東坡肉)'이다. 이 요리는 거의 천 년 가까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그 유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소식(1037-1101)은 북송 시대의 대문학가로, 본명은 자첨(子瞻)이며,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흔히 소동파라고 부른다. 그는 두 차례 항저우의 지방 관리로 재직하며 지역 주민들을 위해 실질적인 좋은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소동파의 업적은 절강 지역 민간에 널리 전해지고 있다.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은 서호(西湖)의 제방을 '소제(蘇堤)'라 부르며,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동파육'의 유래도 바로 이 '소제'를 쌓는 일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소동파는 젊은 시절 북송의 수도에서 관직 생활을 했는데, 당시 개혁파 왕안석과 정치적 견해가 달라 스스로 지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1071년 항저우 통판으로 부임한 후, 밀주(密州), 서주(徐州), 호주(湖州) 등지에서도 지방 수령으로 근무했다. 1079년에는 소위 '오대시안(烏台詩案)'으로 탄핵되어 투옥되었고, 몇 달 후 황주(黃州, 오늘날 후베이성 황강)로 좌천되어 '단련부사(團練副史)'라는 명목상의 하급 관직을 맡게 되었는데, 실질적으로는 유배였다. 이 시기 소동파의 마음은 슬펐고, 집은 외롭고, 생활은 매우 궁핍했음이 자명하다. 그러나 당시 황주 일대에서는 돼지고기가 비교적 저렴했기에, 소동파는 가난한 처지에서도 자주 돼지고기를 직접 조리하여 친구들과 함께 맛을 보곤 했다. 그는 돼지고기 조리법에 대해 시 한 수를 지어 소개하기도 했는데, 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황주에는 좋은 돼지고기가 많으니, 값은 흙보다도 싸다. 부자는 먹기를 꺼리고, 가난한 자는 제대로 조리하지 못한다. 불은 약하게, 물은 적게 넣고, 불을 오래 끼면 자연히 맛이 좋아진다." 이로 보아 '동파육'의 연구는 황주 유배 시기에 시작된 것이 분명하다.

1085년 송 철종이 즉위하고, 사마광 일파가 다시 정권을 잡자, 다음 해 소동파는 개경(汴京)으로 돌아와 관직에 복귀했다. 그러나 그는 보수파와 왕안석의 신법(新法)이 긍정적인 의미를 가졌다는 점에서 의견이 달라 또다시 지방 관리로 좌천되었다. 1090년, 그는 다시 항저우의 지방 관리로 부임한다. 그는 이때 항저우의 수만 명의 노동자를 동원해 서호를 준설하고, 제방을 쌓으며, 수리시설을 정비했다. 백성들은 이 수령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돼지고기와 샤오싱주(紹興酒, 황주) 등을 소동파에게 선물했다. 소동파는 가족들에게 지시하기를, 돼지고기를 잘 조리한 후 황주와 함께 공사장에 보내 노동자들을 위로하라고 했다. 그런데 가족들이 실수로 돼지고기와 황주를 함께 끓였고, 그 결과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이렇게 조리한 고기는 유난히 풍부하고 깊은 맛이 나며, 독특한 풍미를 지니게 된 것이다! 이 일은 당시 일화로 널리 알려졌고, 소문은 금세 퍼졌다. 사람들은 소동파의 덕행을 칭송하며, 동시에 그의 조리법을 너도나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동파육'은 항저우의 전통 명물 요리가 되었고,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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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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