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
'호(胡)'는 옛날 북방과 서방의 소수민족을 가리킨다. 이는 호족의 짧고 실용적인 복장을 채택하는 동시에, 그들의 말 타기와 활 쏘기 등 무예를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출전】
『전국책·조책이(戰國策·趙策二)』: "세상을 초월하는 공을 세우려는 자는 반드시 속된 풍습을 벗어나는 부담을 떠안게 되고, 독보적인 안목을 가진 자는 반드시 평범한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마련이다. 지금 내가 백성들에게 호복을 입히고 기마 활쏘기를 가르치려 하니, 세상 사람들이 반드시 나를 비난할 것이다."
해석: 세상을 뛰어넘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려는 사람은 반드시 평범한 사람들 사이의 관습과 비난을 받게 마련이며, 독창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은 반드시 일반 대중의 반발을 겪게 된다. 지금 내가 백성들에게 호족의 복장을 입히고 기마 활쏘기를 훈련시키려 하는데, 보통 사람들은 틀림없이 나를 비난하고 비판할 것이다.
【성어 이야기】
전국시대에 조나라의 북쪽에는 대부분 호족 부족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조나라와 큰 전쟁을 벌이진 않았지만, 자주 소규모 약탈 전투를 벌였다. 호족들은 짧은 상의와 긴 바지를 입고 말을 타고 전투를 벌였기 때문에, 움직임이 매우 유연하고 편리했다. 활을 쏘는 것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었고, 왕래하며 달리는 속도도 빠르고 민첩했다. 반면 조나라 군대는 호족보다 무기는 우수했지만, 주로 보병과 전차 병력이 혼합된 편성이었으며, 장병들이 모두 긴 겉옷을 입고 무거운 갑옷을 착용하여 말을 타는 데 매우 불편했다. 따라서 전투에서 자주 불리한 위치에 놓이곤 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여 조무령왕은 호족의 말 타기와 활 쏘는 기술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기마 활쏘기를 배우려면 우선 복장 개혁부터 시작해야 했고, 호족의 짧은 상의와 긴 바지 복장을 도입해야 했다. 그래서 조무령왕은 기원전 302년에 개혁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조치는 처음부터 숙부인 공자 성(公子成)을 중심으로 한 일부 인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조무령왕은 공자 성을 설득하기 위해 직접 그의 집을 찾아가 설득 작업을 벌였다. 수많은 사례를 들어 호복 채택의 이점을 설명한 끝에, 마침내 공자 성을 설득하여 호복에 동의하게 했으며, 자신이 앞장서서 호복을 입겠다고 약속하게 했다. 공자 성의 설득이 성공한 후에도 여전히 일부 왕족과 신하들이 극력 반대했다.
이들은 조무령왕을 비난하며 말했다. "의복과 풍습은 고대의 이치와 법도에 근거한 것이며, 고대의 법도를 바꾸는 것은 죄악이다." 이에 조무령왕은 반박했다. "고금의 풍속이 서로 다르니, 무슨 고대 법도를 따르겠는가? 왕조들도 모두 계승된 것이 아니라, 무슨 예법을 따르겠는가? 하·상·주 삼대도 시대에 따라 법을 정하고, 상황에 따라 예를 정했다. 예법과 법률은 모두 실정에 맞게 정해야 하며, 의복과 기구는 사용하기 편리하면 되고, 반드시 고대의 방식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조무령왕은 반대 여론을 물리치고, 신하 비의(肥義) 등의 지지를 받아 전국에 호족의 복장을 입도록 명령을 내렸다. 호복은 일상생활에서도 매우 편리했기 때문에, 금세 백성들의 지지를 얻었다. 조무령왕은 호복 개혁이 성공한 후, 곧바로 기마 부대를 훈련시키고 기존의 군사 장비를 개선했다. 그 결과 조나라의 국력은 점차 강화되었으며, 과거에 조나라를 끊임없이 침략하던 중산국을 격파할 뿐만 아니라, 북쪽으로 천 리 이상의 영토를 개척하여 당시의 '칠웅' 중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