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어 이야기

권세에 아첨하고 세력에 기대다 (趨炎附勢)

이수(李垂)는 자가 순공(舜工)이며, 산동성 루오청(聊城) 사람으로, 북송(北宋)의 관리였다. 흥평(咸平) 연간에 과거에 급제하여 차례로 저작랑(著作郎), 관각교리(館閣校理) 등의 직책을 맡았다. 그는 세 권의 『도하형승서(導河形勝書)』를 편찬하여 옛 운하를 다스리는 데 유익한 많은 제안을 하였다. 그는 박학다식하고 정직하여 당시 관료 사회의 아첨과 비위 맞추기 같은 속된 풍조를 매우 혐오하였으며, 부패한 풍조에 동조하지 않아 많은 권력자들을 불쾌하게 만들어 오랫동안 중요한 자리에 등용되지 못하였다.

일諾천금

진나라 말기, 초지(楚地)에 계포(季布)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성정이 곧고 정의감이 강하며 남을 돕는 것을 좋아했다. 한번 약속한 일이라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반드시 방법을 찾아서 해냈다. 그래서 모두에게 칭찬을 받았다. 초한지쟁(楚漢之爭) 당시, 계포는 항우(項羽)의 부하로, 여러 차례 책략을 세워 유방(劉邦)의 군대를 패배시킨 적이 있었다. 항우가 패배한 후, 계포는 홀로 중병을 뚫고 도망쳐 천애를 떠도는 생활을 시작했다. 황제가 된 유방은 이 일을 떠올릴 때마다 분노를 금치 못하고, 계포를 통촉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효를 위해 밥을 지고 부모를 부양하다 (負米養親)

자로(子路)는 춘추 시대 말기 노나라(魯國) 사람으로, 공자의 제자들 가운데 정치에 능했다고 유명한 인물이다. 공자의 총애를 받는 제자였으며, 성격이 직설적이고 용감하며, 특히 효성이 지극했다. 그러나 어릴 적 집안이 매우 가난하여 늘 조잡한 곡식과 들나물로 생활을 이어갔다. 어느 날, 늙은 부모님이 밥을 먹고 싶다고 하셨지만 집에는 쌀 한 톨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자로는 산을 몇 번 넘어서 친척 집에 가서 조금이라도 쌀을 빌리면 부모님의 소원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于是 어린 자로는 산과 골짜기를 넘어 십여 리 길을 걸어 친척 집에서 작은 자루의 쌀을 지고 돌아왔다. 부모님이 향기로운 밥을 드시는 모습을 보고, 자로는 피로를 잊었다. 이웃 사람들은 모두 자로를 용감하고 효심 깊은 훌륭한 아이라고 칭찬했다.

사방지를 향한 큰 뜻

춘추 시대, 진헌공(晉獻公)은 애첩 여기(驪姬)의 부추김을 받아 태자 신생(申生)을 죽이고, 공자 중이(重耳)와 이오(夷吾)를 각각 적국(狄國)과 양국(梁國)으로 도망치게 했다. 이후 진헌공이 죽자, 이오는 진목공(秦穆公)과 제환공(齊桓公)의 도움을 받아 진나라의 군주가 되었다. 그는 중이가 돌아와 왕위를 빼앗길 것을 걱정하여 사람을 보내 중이를 죽이려 했다. 이에 중이는 다시 적국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며 제나라로 도망쳤다.

백척간두

송나라 시기, 창사(長沙)에는 경침(景岑)이라는 고승이 있었는데, 호(號)는 소현대사(招賢大師)였다. 그는 불학(佛學)에 조예가 깊어, 늘 각지로 다니며 도를 전하고 경전을 강의했다. 대사의 강의는 깊이 있고도 이해하기 쉬우며, 생생하고 감동적이어서 청중들은 늘 깊이 감명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