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예전에는 학생이 공경하는 마음으로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 것을 의미했으며, 오늘날에는 스승과 어른을 존경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학문을 배우려는 간절한 마음과 학식 있는 어른에 대한 존경심을 비유하는 말이다.
【출전】
《송사(宋史)·양시전(楊時傳)》: "낙양에서 정의(程頤)를 뵈었는데, 양시는 그때 나이가 이미 사십이었다. 어느 날 정의를 뵈었을 때, 정의가 마침 명좌(瞑坐)하고 있었으므로, 양시와 유작(游酢)은 문밖에서 공손히 서서 기다렸다. 정의가 깨어났을 때는 문밖의 눈이 이미 일척(一尺)이나 쌓여 있었다."
해설: 양시와 유작 두 사람이 스승 정의를 뵙기 위해 찾아갔는데, 마침 스승이 명상 중이었다. 두 사람은 스승을 깨우지 않기 위해 문밖에서 기다리다가 정의가 깨어날 때까지 서 있었다. 그 사이 문밖에는 눈이 일척 이상 쌓였다. 후세 사람들은 "정문입설"이라는 사자성어를 통해 학문을 배우는 사람이 스승을 존경하고 학문을 배우는 마음이 진실하고 굳세다는 것을 표현한다.
【성어 이야기】
송나라 시대에 형제가 있었다. 형은 정호(程顥), 동생은 정의(程頤)였다. 두 형제 모두 시서(詩書)를 두루 읽어 학식이 풍부하고, 학문에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들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멀리서부터 끊임없이 찾아왔다.
당시 양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릴 때부터 똑똑하고 배우기를 좋아했다. 네 살에 독서를 시작했고, 일곱 살에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며, 여덟 살에는 사(詞)를 짓고 수필을 썼다. '신동(神童)'이라 불리며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곳까지 이름이 알려졌다. 양시는 열다섯 살부터 경전과 역사서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고, 희녕 9년(서기 1076년)에 드디어 진사(進士)에 급제했다. 그 후 평생을 글을 쓰고 학설을 세우는 데 바치며, 사방을 돌아다니며 강의를 하였다. 그가 가는 곳마다 현지 학자들의 큰 환영을 받았다. 그가 함운사(含雲寺)와 귀산서원(龜山書院)에 도착했을 때, 이곳이 산수가 수려하고 인재가 많음을 알고, 장기간 이곳에 머물며 이학(理學)을 연구하고 『열자해(列子解)』를 저술하기로 결심했다.
어느 해, 양시는 류양현(瀏陽縣)의 현령으로 부임하려 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정의의 학문과 재능을 존경해왔다. 부임 길이 멀고 험했지만, 그는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루오양을 거쳐 정의를 찾아가 사사(師事)하고자 했다. 어느 날, 양시와 그의 동문 유작은 어떤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는데, 올바른 답을 얻기 위해 함께 정의의 집을 찾아가 자문을 구했다.
당시는 한겨울로, 천지가 얼어붙을 듯 추웠고 길에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길을 가는 도중 차가운 북풍이 매섭게 불고, 하얀 눈이 흩날렸으며, 찬바람이 그들의 옷깃을 뚫고 들어왔다. 두 사람은 옷을 꽉 여미고 서둘러 길을 나아갔다. 정의의 집에 도착했을 때, 마침 정의 선생이 난로 옆에서 눈을 감고 명상 중이었다. 양시와 유작은 스승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문밖에서 공손히 서서 스승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때, 먼 산은 옥으로 덮인 듯하고, 나무들은 은빛 장식을 두른 듯했으며, 집들은 모두 흰 천으로 덮인 듯했다. 양시의 한쪽 발은 얼어붙어 떨릴 정도로 추웠지만, 그는 여전히 공손히 서 있었다. 한참 후, 정의가 잠에서 깨어 창밖을 보니 눈보라 속에 서 있는 양시가 온몸에 눈을 뒤집어쓰고 있었고, 그 발밑의 눈은 이미 일척 이상 쌓여 있었다. 정의는 급히 일어나 두 사람을 집 안으로 맞이했다.
이후 양시는 '정문입설'의 참뜻을 깨달았고, 동남 지방의 학자들은 양시를 "정학의 정통(程學正宗)"이라 추앙하며, 세상 사람들은 그를 "귀산선생(龜山先生)"이라 불렀다. 양시는 평생 이학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특히 "동남에 도를 장려(倡道東南)"한 공로로, 민중(閩中) 이학의 부흥에 개척의 공을 세웠고, 후세에 "민학의 시조(閩學鼻祖)"라 불리게 되었다. 그의 저술은 많으며, 주로 『양귀산선생문집(楊龜山先生文集)』에 실려 있다. 그의 철학 사상은 정호와 정의 형제의 사상 체계를 계승하였으며, 후세에 "정씨 정통(程氏正宗)"이라 칭송되었다. 이후 "정문입설"의 이야기는 스승을 존중하고 도리를 중히 여기는 천고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