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 이야기

금두와 은두

동북 지방의 민간에서는 이렇게 한 구절의 구절이 전해져 있다. "부유지(옛길림의 지명)는 보물이다. 금은 보물은 어디서나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이 게으르지 않는다면, 금두와 은두가 온통 땅에 널려 있다." 금두와 은두를 이야기하면, 오랜 전설을 불러일으킨다.동북 송화강가에 한 금씨의 농가가 살고 있었다. 노부부는 늦게 자녀를 낳아 두 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절약하며 두 아들을 위해 약간의 재산을 모았다. 두 아들이 장가를 가서 좋은 생활을 사는 데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려 했다.

동파육

절강성의 도시와 시골에는 송나라의 대문호 소식(蘇軾)과 관련된 유명한 요리가 하나 있는데, 바로 '동파육(東坡肉)'이다. 이 요리는 거의 천 년 가까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그 유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무송이 범을 때린다

무송은 경양강 근처의 여관에서 술 열여덟 사발을 들이켠 후, 몽둥이를 거꾸로 들고 비틀비틀 걸으며 경양강으로 향하려 했다. 여관 주인이 뒤쫓아 나와 소리쳤다. "가시면 안 됩니다! 가시면 안 됩니다! 요즘 언덕 위에 범이 나타나서 벌써 스물셋에서 서른 명의 목숨을 앗아갔어요!" 무송은 듣고 웃으며 말했다. "날 겁주려 드는군. 정말 있다고 해도 난 무섭지 않아!"

신기묘산의 유기

명나라 시대에 전해져 내려오는 유명한 예언서 『소병가』는 명태조 시기의 국사 유기(유백온이라고도 함)가 지었다. 유기는 수리(數理)에 정통했으며, 민간에서는 신선이 하계에 강림하여 태조를 보좌해 위업을 달성했다고 전해진다. 민간 이야기와 문학 작품 속에서 그는 늘 신기묘산(神機妙算)을 부리고, 미래를 예지(豫知)하며, 고금을 통찰할 뿐 아니라 바람과 비를 불러오고 신통이 매우 광대하여 "앞으론 오백 년, 뒤으론 오백 년을 안다"고 하여 신선과 같은 인물로 묘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