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필, 사사명을 대파하다

당 왕조가 두 개의 수도를 되찾은 후, 안경서는 하북 지방으로 도망가 60여 개의 성을 점령하고 계속 저항했다. 당숙종은 안경서 토벌을 위해 대군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이때 당나라 군대는 9명의 절도사가 이끄는 60만 병력을 한데 모았다. 이 9개 부대를 누구에게 통솔하게 할 것인가? 지위와 명망을 따지면 곽자의와 이광필이 마땅했지만, 깊은 불신을 품고 있던 당숙종은 곽자의와 이광필의 권력이 너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해 일부러 최고사령관을 두지 않고, 전투에는 전혀 경험이 없는 환관 어조은을 관군용사(출정하는 장수들을 감시하는 군사장관)로 파견하여 9명의 절도사 모두가 그의 지휘를 받도록 했다.

당군이 엽성(鄴城)을 공격할 때, 사사명은 다시 당나라에 반기를 들고 범양에서 병력을 이끌고 안경서를 구원하기 위해 출격했다. 60만 당군은 반란군과 결전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진형을 제대로 갖추기도 전에 갑자기 거센 폭풍이 몰아쳐 모래먼지가 하늘을 뒤덮어 하늘과 땅이 어두워졌다. 9개 부대는 통일된 지휘가 없었기 때문에 모두 놀란 말떼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당군이 패배하자 어조은은 패배의 책임을 전부 곽자의에게 뒤집어씌웠다. 당숙종은 어조은의 말을 믿고 곽자의의 숙방절도사 직위를 해임하고 이광필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게 했다.

이때 반란군 내부에서는 또 다시 내분이 발생했다. 사사명은 엽성에서 안경서를 죽이고 스스로 대연(大燕)의 황제가 되어 병력을 정비한 후 낙양 방면으로 진격했다.

이광필이 낙양에 도착했을 때, 낙양 관리들은 사사명의 병세가 강성하다는 소문을 듣고 두려움을 느꼈고, 일부는 동관으로 후퇴할 것을 주장했다. 이광필은 "지금 양측의 전력이 비등하니 우리가 후퇴하면 적은 더욱 기세등등해질 것이다. 오히려 우리 군대를 하양(현재의 허난성 맹현)으로 옮겨 전진하면 공격할 수 있고 후퇴하면 방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광필은 관리들과 백성들을 전부 낙양에서 철수시킨 후 병력을 이끌고 하양으로 갔다. 사사명이 낙양에 진입했을 때는 이미 텅 빈 도시가 되어 있었다. 사사명은 사람도 없고 식량도 없었으며, 이광필의 기습을 두려워해 어쩔 수 없이 병사를 이끌고 성을 나와 하양 남쪽에 진지를 구축하고 이광필의 당군과 마주 보았다.

이광필은 오랜 전장 경험을 가진 노장이었다. 그는 현재 병력이 반란군보다 열세임을 알고 힘으로 맞서기보다는 지략으로 승부를 걸기로 했다. 그는 사사명이 하북에서 천여 마리의 전마를 데리고 와 매일 강가의 모래벌판에서 목욕과 방목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하들에게 암말들을 모으게 하고, 새끼말들은 마구간에 묶어두게 했다. 반란군의 전마가 모래벌판에 도착하면 암말들을 풀어 적군의 말들과 섞이게 한 것이다. 잠시 후 암말들이 새끼말을 그리워하며 울며 돌아오자, 적군의 말들도 당군 진영으로 따라왔다.

사사명은 순식간에 천 마리가 넘는 전마를 잃고 극도로 분노했다. 그는 즉시 수백 척의 전선을 집결시키고 수로를 통해 공격을 개시했으며, 앞장에 불침(火船)을 세워 당군의 부교를 불태우려 했다.

이광필은 이 소식을 듣고 수백 개의 굵고 긴 대나무 지팡이를 준비하고, 지팡이 끝에 철갑을 두르게 했다. 반란군의 불침이 다가오자 수백 명의 병사들이 부교 위에 서서 대나무 지팡이로 불침을 밀어냈다. 불침은 전진하지 못한 채 불에 타 기둥이 부서지고 선체가 갈라지며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당군은 부교 위에서 돌을 쏘는 포를 발사해 적군 전선을 공격했고, 배 위의 적병들은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일부는 사람과 함께 배째로 물속에 가라앉았고, 일부는 간신히 육지로 기어올라 목숨을 걸고 도망쳤다.

사사명은 여러 차례 부하 장수를 보내 하양을 공격했지만, 모두 이광필의 계책에 의해 물리쳐졌다.

마지막으로 사사명은 결심을 굳히고 강력한 병력을 집결시켜 반란장수 주치를 보내 하양 북성(北城)을 공격하게 했고, 자신은 정예병을 이끌고 남성을 공격했다.

아침, 이광필은 부하 장수들을 이끌고 북성 위로 올라 적군의 동태를 관측했다. 적군은 검게 뭉쳐진 거대한 집단으로 북성으로 일렬로 다가오고 있었다. 당군 장수들은 입에서는 말을 아꼈지만 마음속으로는 벌써 두려움을 느꼈다. 이광필은 그들의 심정을 눈치채고 침착하게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라. 반란군은 많지만 진열이 어지럽고, 조금 오만한 기색이 보인다. 걱정하지 말라. 정오 이전에 반드시 그들을 격파할 수 있다!"

이어 이광필은 장병들을 나누어 공격하도록 명령했다. 장병들은 용감하게 싸웠지만, 적군은 잠시 후퇴했다가 후속 부대가 도착했다. 태양이 정오 무렵에 이르렀지만 양측은 여전히 승패를 가리지 못했다.

이광필은 다시 부하 장수들을 소집해 의논하며 말했다. "적군의 진형을 관찰해 보았을 때, 어느 방향의 전투력이 가장 강한가?"

부하 장수들은 "북서쪽 모퉁이와 남동쪽 모퉁이"라고 답했다.

이광필은 고개를 끄덕이며 즉시 500명의 기병을 뽑아 두 명의 장수를 파견해 북서쪽과 남동쪽 모퉁이를 분리 공격하게 했다.

이광필은 남은 장병들을 모두 집결시켜 엄숙하게 군령을 선포했다. "장병들은 내 깃발을 보고 행동하라. 내가 천천히 깃발을 흔들면 각자 행동해도 되고, 급하게 깃발을 땅에 떨어뜨리면 총공격 신호다. 이 신호를 본 장병들은 반드시 용감히 전진해야 하며, 전장에서 후퇴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을 마치며 그는 단도를 꺼내 장화 속에 꽂으며 말했다. "전쟁이란 본래 생사가 달린 일이다. 나는 국가의 신하로서 절대 적의 손에 죽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전선에서 전사하면, 나는 여기서 자결하겠다."

장병들은 이광필의 격려의 말을 듣고 용기가 백배가 되어 전장으로 돌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장 하정옥이 전선에서 돌아오자, 이광필은 즉시 병사들을 보내 자신의 칼을 들고 가 하정옥을 현장에서 참수하려 했다.

하정옥은 전령 병사가 자신을 죽이려 하자 큰 소리로 외쳤다. "내 말이 화살을 맞았을 뿐 퇴각한 것이 아닙니다!"

전령 병사가 이광필에게 보고하자, 이광필은 즉시 하정옥에게 전투용 말을 바꿔 태우고 다시 전장에 나가 지휘하도록 명령했다.

이광필은 당군의 사기가 높아진 것을 보고 급히 깃발을 땅에 떨어뜨리며 총공격을 명령했다. 각 부대 장병들은 성 위 깃발 신호를 보고 앞다투어 적진으로 돌진했고, 함성 소리는 하늘을 뒤흔들었다. 반란군은 맹렬한 공격을 받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붕괴되어 도망쳤으며, 당군에게 천여 명이 살해되거나 포로로 잡혔고, 또 천여 명이 물속으로 밀려 들어 익사했으며, 북성을 공격하던 반란장수 주치도 도망쳤다.

사사명은 계속 남성을 공격하고 있었다. 이광필은 북성에서 포로로 잡은 반란군을 강가로 몰아갔다. 사사명은 주치의 전군이 무너졌다는 것을 알고 더 이상 싸울 수 없어 급히 후퇴 명령을 내리고 낙양으로 도망쳤다.

이광필은 사사명의 공격을 연이어 물리치며 양측은 거의 2년간 맞서 있었다. 당숙종은 어조은의 말을 듣고 이광필에게 낙양을 공격하라고 명령했지만, 이광필은 적군 병력이 여전히 강하다고 보고 함부로 성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그러나 당숙종은 연이어 환관을 보내 공격을 재촉했고, 이광필은 위험을 무릅쓰고 공격했지만 결국 패배하고 말았으며, 이광필도 사령관 직에서 해임되었다.

사사명은 강력한 상대를 잃자 승세를 타고 장안을 공격했다. 다행히 이때 반란군 내부에서 세 번째 내분이 발생했고, 사사명은 아들 사조의에게 살해당했다.

반란군 내부는 사분오열되었고, 763년에 사조의는 전쟁에서 패배한 후 자살했다.

안록산이 난을 일으킨 시점부터 사조의가 패배할 때까지, 중원 지역은 8년간 내전을 겪었으며, 역사적으로 이를 '안사의 난'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