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의 다툼: 제고제와 왕승천의 붓 대결

남제(南齊) 고제 소도성(蕭道成)이 재위할 당시, 궁중에서는 특별한 서예 대회가 열렸다. 대회에 참여한 한쪽은 바로 당시의 황제 소도성이었다. 본래 금위군 장수였던 소도성은 어쩌다 서예에 푹 빠지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부지런히 연습하여, 마침내 즉위하여 황제가 되었을 무렵에는 훌륭한 글씨를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자주 글씨를 써서 신하들에게 하사하였고, 일부 아첨하는 간신들은 늘 그의 글씨가 천하무쌍이라며 극찬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고제는 진심으로 자신의 서예가 천하제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대회의 다른 한쪽은 서예의 대가 왕승천이었다. 그는 고제의 조정에서 시중(侍中)을 지냈으며,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의 4대 손자였다. 예술적으로는 조상의 기법을 계승하면서도 혁신을 더해 '천하제일'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제고제는 누군가 왕승천의 서예를 '천하제일'이라 칭한다는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매우 불쾌하게 여겼다. 곧바로 한 도령을 내려 왕승천을 궁중으로 소환하여 서예 대결을 벌이도록 하였다. 왕승천은 흔쾌히 응했다.

이에 왕승천의 부인은 크게 당황하여 남편을 책망했다. "정말 어리석구나! 어찌 감히 황제와 시합을 하겠다고 하셨소? 만약 당신이 이기기라도 한다면 큰 화를 당할 거요! 차라리 핑계를 대고 가지 않는 게 낫지 않겠소?" 왕승천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황제의 명령을 받았으니 반드시 가야 하오." 부인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러면 일부러 글씨를 못 쓰게 하고, 지기로 하면 어떻겠소?" 왕승천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비록 시합이라지만, 온 힘을 다해야지. 만약 거짓으로 아첨하여 주군을 기쁘게 한다면, 그야말로 인격을 저버리는 일이 아니겠소?" 부인은 근심이 가득했지만, 왕승천 본인은 오히려 여유로웠다. "걱정 마시오, 내가 알아서 잘 해결할 터이니."

궁중에서는 문무백관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금란전(金鑾殿) 정중앙 책상 위에는 문방사보(文房四寶)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시합이 시작되자, 당연히 만승지존인 황제가 먼저 나섰다. 그는 책상 앞으로 다가서더니 오른손으로 붓을 들고 왼손으로 옷소매를 걷어붙인 뒤 숨을 죽이고 정신을 집중하여 붓을 휘둘렀다. 붓을 놓기가 무섭게 신하들은 땅바닥에 절하며 '만세'를 외치며 일제히 칭찬했다.

신하들의 환호성을 들은 고제는 매우 기뻐하며 왕승천을 바라보며 말했다. "왕 애경(愛卿), 차례입니다."

"신이 명을 받들겠습니다." 왕승천은 붓에 진한 먹을 듬뿍 적신 뒤 즐거운 마음으로 붓을 휘둘렀다. 붓끝은 용이 날고 뱀이 기는 듯 유려하게 흘러 한 번에 완성되었다. 주위를 둘러싼 신하들은 다시 진심 어린 찬탄을 쏟아냈지만, 황제의 체면을 의식하여 목소리를 많이 낮추었다.

고제는 용의자리에 앉아威嚴 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모든 경들아, 함께 평가해 보아라. 내 글씨가 좋은가, 왕 애경의 글씨가 좋은가?" 그중 아첨하는 신하들이 서둘러 대답했다. "폐하의 글씨가 훨씬 좋습니다! 폐하께서 천하제일이십니다!" 고제는 얼굴 가득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왕승천을 흘끗 보며 말했다. "왕 애경, 자네는 누가 첫 번째라고 보는가?"

왕승천은 망설임 없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신의 글씨가 첫 번째입니다." 이 말이 나오자마자 전당이 술렁였다. 왕승천과 가까운 몇몇 신하들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왕승천이여, 왕승천이여, 이렇게 용의 눈을 건드려 스스로 고초를 자초하는구나!" 과연 고제의 얼굴빛이 금세 어두워졌다. 그는 왕승천이 공개적으로 자신을 능가했다고 말한 것을 탓하며, 황제의 체면이 깎였다고 여겨 마음속 분노가 치솟았다. 화를 내려는 순간, 왕승천이 다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폐하께서도 첫 번째이십니다."

"이건 무슨 말인가? 어떻게 두 명의 첫 번째가 있단 말인가?" 고제는 의아해했다. 왕승천이 답했다. "고금에 있어 군주는 군주의 도리가 있고, 신하는 신하의 도리가 있습니다. 어떻게 군주와 신하를 견줄 수 있겠습니까? 신의 서예는 문무백관들 사이에서야 첫 번째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폐하의 글씨는 고금을 통틀어 어느 황제보다도 뛰어나므로, 폐하의 서예는 황제들 중에서 첫 번째이십니다."

이 말을 들은 제고제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옳은 말이로구나. 역대 황제들 중 내 글씨보다 뛰어난 자는 아무도 없지. 내가 이 자리를 물리치지 않겠노라." 그는 왕승천이 자신의 체면을 살려주었다고 생각하고, 물 흐르듯 상황을 받아들였으며, 허영심도 어느 정도 만족했다.

이렇게 왕승천의 지혜로운 말 한마디로 위기가 해결되었고, 전례 없는 이 서예 시합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