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위한 출구를 찾아라

한 여성은 이렇게 썼다. "저는 타오위안에 살고 있고, 회사는 타이페이에 있습니다. 매일 왕복으로 차 안에서 3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자리가 있긴 하지만 차 안이 매우 시끄럽고 흔들림이 심해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사하고 싶지도 않고 직장을 옮기고 싶지도 않으며, 직접 운전하기도 싫습니다. 전날 밤에는 늘 충분히 잘 자기 때문에 차 안에서 낮잠을 잘 필요도 없습니다. 매일 3시간을 어떻게 절약할 수 있을까요?"

이 여성의 질문은 마치 나를 도전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시간 관리에서 우리는 반드시 다음과 같은 것을 구분해야 한다. 무엇이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인가? 무엇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인가? 차 안의 시끄러움과 흔들림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이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직장을 옮기거나, 이사하거나, 직접 운전하는 것뿐이다. 가족과 함께 살고 싶어 이사를 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현재의 직장을 너무 좋아해서 옮기기 싫어하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직장을 옮기지 않고, 이사하지도 않으며, 직접 운전하지도 못하고, 차 안에서 녹음테이프를 들을 수도 없다면, 남아 있는 비교적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전날 밤 1~2시간 정도 덜 자고, 그 덜 잔 시간을 이용해 책을 읽거나, 일을 준비하거나, 운동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은 차 안에서 그 시간을 보충해 잠을 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여성은 매일 집에서 충분히 잘 자고, 다음 날은 오히려 차 안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남들이 또 어떤 좋은 방법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기독교에는 이런 말이 있다. "하나님이 한 문을 닫으시면, 다른 곳에 창을 열어주신다." 누군가 자신의 길을 막았을 때, 일반 사람들은 다른 길을 찾기 위해 방법을 모색한다. 그런데 이 여성은 가능한 해결 방법을 계속 막아버리니, 남들이 도와줄 수가 없다.

영화 『쥬라기 공원』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 "생명은 언제나 출구를 찾는다." 나는 이 말이 공룡을 묘사하는 데에도 적합하지만, 인간에게 훨씬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신의 실패를 위한 핑계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위한 출구를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