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고조 유방, 인재를 알아보고 잘 활용하다

사마천의 『사기·고조본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유방이 천하를 차지한 경험을 정리하며 말하기를, "...帳幄(帳과 幕) 안에서 계책을 세우고 천 리 밖에서 승패를 결정하는 일에는 나는 자방(자량)만 못하다.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보호하며 군량을 공급하고 군량 수송로를 끊기지 않게 하는 일에는 나는 소하만 못하다. 백만 대군을 이끌고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공격하면 반드시 점령하는 일에는 나는 한신만 못하다. 이 세 사람은 모두 뛰어난 인재이다. 나는 그들을 쓸 수 있었기 때문에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문장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장량, 소하, 한신의 문무(文武)에 걸친 뛰어난 재능에 경외심을 금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 진정으로 숭배하고 존경받아 마땅한 인물은 한고조 유방이다.

인재를 알아보고 잘 활용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실천하기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유방은 정확히 이 점을 해냈다.

유방은 어릴 적에 "가족의 생산 노동을 돌보지 않았고", 장성해서야 비로소 사수정장이라는 하급 관리 자리를 얻었다. '진나라가 사슴을 잃어 천하가 함께 쫓는다'는 큰 격변 속에서 그는 오히려 영웅들을 제압하고 결국 서한 왕조를 건국하였다. 그의 성공 비결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장량, 소하, 한신과 같은 인재들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한 왕조 건국의 전 과정을 보면, 장량은 유방을 보좌하여 한나라를 건국하는 과정에서 '참모장'의 역할을 했으며, 서한 왕조의 개국 공신이다. 소하는 병사와 군량을 수송하며 전선 작전을 지원하여 '후근부대장'의 역할을 했다. 한신은 병법에 귀신처럼 능통하여, 군대는 많을수록 좋고, 수차례 기적적인 전과를 올렸으며, 게하에서 항우를 크게 무찌르고 한 번의 전투로 천하를 안정시켰다. 이는 '총사령관'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유방 휘하의 문신과 무장들은 대부분 다양한 사회 계층 출신이었다. 조참은 페현의 하찮은 관리였고, 번해는 개를 잡는 도살업자였으며, 하후영은 마차를 몰던 마부였다. 주박은 돗자리를 짜는 일을 하며, 결혼식과 장례식에서 북을 치는 악공도 겸했다. 관영은 천을 파는 상인이었고, 누경은 마차를 몰던 차부였으며, 여식기는 가난한 서생이었다. 팽월과 형포는 강도였다. 진평의 경우, 본래 위왕 구의 태복(태어를 돌보는 관리)이었고, 나중에 항우를 따라 요새를 넘어가 도위(군관)로 임명되었다. 그는 유방에게 귀의한 후 호군중위(군대 감찰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그는 반간계를 써 항우가 모사 범증을 쓰지 못하게 하고, 작위를 주어 장군 한신을 붙잡는 등의 제안을 하며 한나라 건국에 중대한 기여를 했다. 이후 혜제, 여후, 문제 시대의 재상으로 재직했으며, 주박과 협력하여 여후의 쿠데타를 무너뜨리기도 했다. 그의 개인적인 이력을 따지면 집안이 가난했고, 하급 관리 시절에는 뇌물을 받고 부정부패를 저질렀으며, 형수와 관계가 모호하여 '형수를 갈취하고 금품을 받았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한신의 경우, 난창정장과 빨래하는 어머니 집에서 식음을 얻어먹을 때, 부유한 집 자제들의 괴롭힘과 모욕을 무수히 당했으며, '남의 다리 사이를 기어나간다'는 추한 소리를 들었다.

이처럼 출신이 좋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 심지어 '닭 울고 개 훔치는 자'라 불릴 만큼 하찮은 이들이라 하더라도, "污辱(오욕)의 이름을 지니고 부끄러움을 당하더라도", 유방은 그들을 등용하여 "결국 왕업을 이룩하고 천 년 동안 이름을 떨쳤다." 그들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피하는 것이다.

유방의 현명함은 인재를 마치 도구를 사용하듯이,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피하는 데 있다. 장량은 한나라의 귀족으로 고위층에서 생활하며, 권모술수에 능통했다. 소하는 페현의 관리로 기층 경험을 풍부하게 갖추고 있어 행정 조직 능력이 뛰어나 군량 담당에 적합했다. 한신은 "상량과 항우가 일어날 때 칼을 들고 그를 따랐다"고 하며, 병사를 이끄는 용기를 갖췄다. 이 '삼걸(三傑)'은 유방이 그들의 장점을 살려 각자의 자리에 배치함으로써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번해는 어릴 적 개 도살을 업으로 삼았으나, 유방을 따라 남북을 전전하며 수차례 기적적인 전과를 올렸다. 육가(陸賈)는 입이 발달한 변사가로, 유방에게 『신어(新語)』 12편을 올렸으며, 매번 장을 읽을 때마다 "고제는 항상 칭찬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하며, 후에 유명한 정치 논객이 되었다.

이러한 인물들이 모여 유방 휘하에서, 모신(謀臣)은 비처럼, 맹사(猛士)는 구름처럼 모여, 일시에 장관을 이루었다.

유방의 뛰어난 점은 인재를 의심하지 않고, 의심하는 자는 등용하지 않는 데 있다. 유방의 부대에는 원래 항우 휘하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항우 휘하에서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 유방에게 망명해 온 것이다. 유방은 대문을 활짝 열고, 일사불분(一視同仁)으로 환영했다. 예를 들어 한신은 원래 항우 휘하의 사람이었으나, 항우 휘하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해 유방에게 망명했다. 또 진평의 경우, 그의 길은 더 길었다. 원래 위왕 휘하의 사람이었으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해 항우에게 망명했고, 다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해 유방에게 망명했다. 진평이 항우의 군대에서 탈출해 한영(漢營)으로 향할 때, 유방은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유방은 진평에게 물었다. "진 선생, 항우 휘하에서는 어떤 직책을 맡았습니까?" 진평이 말했다. "도위였습니다." 유방은 말했다. "좋아, 내게 온 지금도 여전히 도위를 맡게 하지." 즉시 진평을 도위로 임명했다. 임명이 발표되자 한영의 여론이 술렁였고, 유방의 오랜 추종자들이 불만을 품어, 유방에게 가서 진평의 흠을 찾는 말을 했지만, 유방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바로 유방의 이러한 신뢰 때문에 진평은 유방을 위해 헌신할 수 있었다. 당시 유방과 진평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유방이 물었다. "지금 우리와 항우는 서로를 제압하지 못하는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데, 선생이 생각하기에 어떻게 하면 기이한 전략으로 승리하고, 빨리 이 전쟁을 끝낼 수 있을까?" 진평이 말했다. "항우는 의심이 많습니다. 반간계를 써 항우가 부하들을 더 이상 신뢰하지 못하게 하면, 그의 양팔을 잘라낸 것과 같습니다. 이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유방은 말했다. "이 계책 좋다. 선생이 직접 처리해주게." 비용 문제는 걱정하지 말고, 즉시 황금 사만 근(그 당시의 황금은 황동)을 배정하겠다. 어떻게 쓰든 마음대로 쓰게. 수입 지출을 묻지 않겠다." 수입 지출을 묻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즉, 보고하지 않아도 되고, 감사를 받지 않으며, 마음대로 쓰라는 뜻이다! 항우를 무너뜨려주기만 하면, 절약한 돈은 모두 너에게 주겠다.

인재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응당한 보수만이 아니라, 더 큰 의미에서 존중과 신뢰가 필요하다. 이러한 인재들을 존중하는 유일한 방법은 성의를 갖고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유방은 이러한 장점이 있었다. 장량, 한신, 진평과 같은 사람들이 유방과 상의할 때 문제를 제기하면, 유방은 모두 사실대로 솔직하게 답변하며,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설사 그런 답변이 자신에게 불명예스럽더라도 말이다.

인재를 사용할 때는 우선 그를 신뢰하고 존중해야 하며, 동시에 보상도 해야 한다. 왜냐하면 보상은 인재의 기여를 실질적으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방이 천하를 차지한 후, 각자의 공로에 따라 공신들에게 공을 따져 상을 주었다. 소하, 장량, 한신, 팽월 등 일군의 사람들을 봉상(封賞)한 것은 물론,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인 옹치(雍齒)까지 봉상했다. 옹치가 봉상되자, 모든 공신들이 안심했으며, 유방이 친소(親疏)가 아닌 오직 공로에 따라 상을 주는 것을 깨달았다. 한 그릇의 물을 평평하게 따르는 공정함이 바로 '공정함이 밝음을 낳는다'는 효과를 즉각적으로 보여주었다.

공을 따져 상을 줄 때, 유방은 소하를 1위로 정했다. 이를 통해 유방의 국가 운영에 있어서 성숙함을 엿볼 수 있다. 왜 소하를 제일 공신으로 정했는가? 첫째, 소하는 혁명의 원로이자 건국의 원훈으로, 유방과 함께 봉기했으며, 공로가 뚜렷하다. 둘째, 소하의 중요한 기여는 당시 대량의 문서와 기록을 즉시 구해낸 데 있다. 당시 유방이 관중을 함락시키고 군대가 함양 성내로 쳐들어갔을 때, 장군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물건을 빼앗고, 금은보화를 빼앗거나, 여자를 빼앗는 데 급급했다. 오직 소하만 진나라의 국가 기록 보관소로 뛰어들어, 진나라의 지도, 장부, 각종 문서 자료를 모두 보존해냈다. 결국 유방이 천하를 통일했을 때, 어느 지역이 가난하고 어느 지역이 부유한지, 어느 지역에 어떤 물산이 있고 어떤 상황인지, 전국의 형세를 모두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유방은 말할 수 없이 뛰어난 리더십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그가 인재를 신뢰하고, 인재를 사용하며, 그들의 능동성을 충분히 불러일으키고, 동시에 은밀히 통제하고 방비함으로써, 당시 천하의 인재들을 모두 자신의 주위에 집결시켜 최적의 조합을 형성했기 때문에, 천하를 차지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