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로보다 폭우가 더 귀하다

고금을 통틀어, 세 사람의 손수건은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만하다. 첫 번째는 반 고흐다. 우리는 그가 『해바라기』를 그렸다는 것만 알면 안 된다. 고흐는 고갱과 격렬한 다툼 끝에 자신의 귀를 자르고, 그것을 손수건에 싸서 한 여인에게 건넸다. 만약 그 손수건이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다면, 『해바라기』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닐 것이다. 두 번째는 임대옥이다. 죽기 직전 원고를 태우며, 평소 손수건에 적어두었던 시들을 모두 불태웠다. "이 시가 적힌 손수건은 원래 그녀가 몸에 지니고 다니며 나의 옛 눈물을 얼마나 닦아주었던가. 이미 인간의 정이 종이보다 얇다는 것을 알았다면, 지금까지 이 시 손수건을 간직한 것을 후회할 것이다..." 세 번째 주인은 파바로티인데, 그는 비극이 아니다. 무대에 설 때마다 오른손에 흰 손수건을 들고, 300파운드의 체중과 검은 수염과 대비되는 흑과 백, 중량과 경량의 대조를 이루며, 모순의 통일이라는 시각적 충격을 주기도 하고, 마치 손수건의 이미지 대사 역할을 하는 듯하다.

또 다른 네 번째 인물은 자신의 손수건을 세상에 보여준 사람인데, 아마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의 손수건에 대한 기억을 고집스럽게 원하며, 손수건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는 미국 지구정책연구소 소장인 레스터 브라운이다. 그는 바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며 말했다. 30년 동안 그는 오직 손수건만 사용하고 휴지티슈는 사용하지 않았으며, 꺼낸 손수건은 반쯤 새것처럼 보였다. 이 부유하면서도 근심 많은 미국 노인은 30년 동안 자동차를 운전하지 않았고, 매달 전기요금은 3.85달러에 불과하다. 마치 30년 전의 단순한 삶을 체험하고 있는 듯하다.

30년 전 우리도 단순한 삶을 살았다. 손수건은 없어서는 안 될 생활 필수품이었으며, 남녀노소 누구나 손수건을 지니고 다녔다. 현재 1인당 연간 8.5킬로그램의 생활용지 소비량은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손수건을 던져라, 손수건을 던져라, 조용히 친구 뒤에 두고, 모두 그에게 말하지 마세요..."라는 노랫말의 어린이 게임은 손수건의 사회적 지위를 충분히 설명해 준다. 어린이들은 왼쪽 가슴에 손수건을 꽂고, 남성들은 낡은 걸레처럼 키와 동전과 함께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다. 그러나 여성의 손에 들어가면 단순한 손수건을 넘어선다. 현명한 여성은 손수건으로 떡 두 개를 싸고, 아름다운 여성은 손수건을 꼬리머리에 대충 묶기만 해도 만화무채(萬紫千紅)를 연출하며, 검은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우아한 여성은 외출할 때 손수건을 손바닥에 살포시 쥐고, 닦는 데도 쓰고 부채처럼 쓰기도 하며, 마음속 어떤 감정을 감출 수도 있다. 이때 손수건은 정신적 의미를 가지며, 나사(羅帕)의 역할을 되찾는다. 소녀가 정원에서 비밀리에 사랑을 맹세할 때, 반드시 흰 손을 들어 나사를 쥐는데, 이 나사는 대개 정을 맺는 물건이다.

중국에서는 손수건 한 장이 한 가지 정을 전달하지만, 미국에서는 한 장으로는 부족하다. 적어도 백 장은 필요하며, 미국인들은 수백 장의 노란 손수건을 집 앞의 오래된 참나무에 걸어 운명을 알 수 없는 가족을 그리워하고 기다린다. 미국의 노란 손수건은 가족애를 전달하며, 노란색은 가장 따뜻한 색이다. 오래된 참나무 아래의 노란 손수건을 중심으로 미국인들은 소설, 영화, 노래를 창작했으며, 모두 일류의 고전이 되었다. 일본의 고쿠라 켄도 같은 제목의 영화를 촬영했고, 몇 년 전 러시아 쿠르스크 잠수함 사고 당시 잠수함 승조원 가족들은 백양나무 아래의 노란 손수건을 오랫동안 걷어내지 않았다. 반세기 후 한국인들은 타인의 생각을 따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시청률이 좋은 드라마 『황색 리본』을 제작했다. 노란 손수건은 가족을 그리워하는 필수품으로 약속되어 있다. 그리움은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노란 손수건은 행복하다. 왜냐하면 노란 손수건은 계속 살아남을 이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서만을 강조하고 실용성을 무시하는 것은 손수건의 본질에 어긋나는 것 같다. 단순한 삶을 사는 레스터 브라운 씨가 손수건을 휴지티슈로 대체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물론 '바다를 본 후에는 더 이상 물이 아름답지 않다'는 경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손수건이 흰 셔츠의 칼라처럼 깔끔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함이 아니라 지저분함이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