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에 따르면, 노반은 고대 중국에서 가장 영리하고 능숙한 장인이었다. 본래 이름은 공수반이었으나 춘추시대 말기 노나라 사람이라서 후세 사람들이 '노반'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그는 오나라의 고소성(지금의 쑤저우)에 도착했다. 인생 천국이라 불리는 이곳은 정말 이름값을 했다. 옛 성곽과 누각들이 차례로 늘어서 있고, 다방과 술집들은 붐비며 활기찼다. 노반은 관광兴致가 더욱 높아져 쑤저우 건축의 특징을 유심히 살피며 즐거움에 젖어 있었다.
그때 갑자기 시끄러운 소란이 들려왔다. 소리를 따라 바라보니 앞쪽 푸른 잔디가 깔린 공터 위에 새로 지은 높은 보탑이 우뚝 서 있었고, 탑 주위로 사람들이 떼를 지어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무슨 일을 벌이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다가가 구경꾼들을 밀쳐내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비단옷을 입고, 높은 모자를 쓰고, 향주머니를 허리에 찬 한 노인이 분노하여 얼굴의 핏줄이 부풀고 눈을 부릅뜨며 눈썹을 치켜세우고 있어 마치 하늘의 투우성을 산산조각 내버릴 듯한 기세였다. 노인 맞은편에는 중년의 장인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무척이나 우울하고 실의에 빠진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노반은 매우 이상하게 여겨 물어보니 사연을 알게 되었다.
그 노인은 지역에서 유명한 부자로서 선을 쌓고 덕행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후세에 전해질 보탑을 세우려 했다.
이 공사는 바로 그 장인이 맡았으며, 나무를 운반하고 기초를 다지는 등 정성스럽게 계획을 세워 거의 3년간의 고된 노동 끝에 보탑이 마침내 완공되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보탑은 완공되었지만 가로로 보든 세로로 보든 항상 기울어져 있었다.
측정 결과 보탑은 실제로 거의 10도 정도 기울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머리를 저으며 수군거리고 비판했다. 부자는 오히려 비난을 받는 것을 견딜 수 없었고 자신의 덕행이 완성되지 못하는 것 같아 매우 화가 나 직접 장인에게 달려가 계산을 했다. "보탑을 헐고 다시 짓든지, 아니면 제대로 바로잡든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관청에 넘겨 엄중히 다스리겠다!"
이에 장인은 난처해졌다. 다시 지으라면 자식을 팔아 집안을 처분해도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없었고, 보탑을 바로잡는 것도 불가능했다. 비록 목조이긴 하지만 무게가 거의 백만 근(약 500톤)이나 나가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어 보탑만 바라보며 한숨을 쉴 뿐이었다.
노반은 보탑을 꼼꼼히 돌아보며 좌절한 장인을 바라보다가 다가가 위로하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무 재료만 좀 가져오세요. 제가 혼자서 한 달도 안 되어 보탑을 똑바로 세워드리겠습니다."
장인은 반신반의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나무를 가져와 작은 희망을 품고 기다렸다. 노반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가져온 나무를 여러 개의 경사진 작은 나무쐐기로 자르더니, 하나씩 기울어진 탑 쪽 위에서부터 안쪽으로 박아넣기 시작했다. 기울어진 부분을 서서히 들어올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딩동댕동 아침 이른 시간부터 밤늦도록 한 달을 매달리자 보탑은 진짜로 곧게 서게 되었다.
장인은 감격스럽게 노반에게 물었다. "은인님, 어떻게 이런 방법으로 보탑을 바로 세울 수 있습니까?"
노반이 답했다. "기운 보탑은 목재로 되어 있고 '촨더우(穿斗)' 구조 방식이라 각 부품들이 단단하게 연결되어 유기적인 전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무쐐기를 박는 방법으로 바로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나무쐐기는 경사진 면을 가지고 있어 박기가 비교적 쉽고, '사냥파천근(四兩撥千斤)' 즉 적은 힘으로 큰 물건을 움직이는 효과가 있으며, 박힌 후에는 기울어진 탑 부분의 높이를 올려 보탑이 더 이상 기울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