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
좌사(左思)의 『삼도부(三都賦)』를 다투어 베껴 쓰다 보니 낙양의 종이값이 올라갔다는 뜻이다. 글이나 저작이 널리 퍼져서 일시적으로 크게 유행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출전】
『진서(晉書)·좌사전(左思傳)』: "(좌사가 『삼도부』를 지은 후) 이에 부유하고 고귀한 집안들이 너도나도 베껴 썼고, 낙양에서 종이값이 비싸졌다."
【성어 이야기】
진나라의 문학가 좌사는 어릴 적 매우 장난기 많고 공부를 싫어하는 아이였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을 두고 자주 화를 냈지만, 어린 좌사는 여전히 장난을 치며 열심히 공부하려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좌사의 아버지가 친구들과 수다를 떨던 중, 친구들이 그에게 "똑똑하고 귀여운 아들이 있어서 부럽다"고 말했다. 그러자 좌사의 아버지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니, 제발 말 마시오. 우리 아들 좌사의 공부 실력은 내가 어릴 때보다도 못하오. 앞으로 크게 성공할 것 같지 않소." 말하면서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 모든 것을 어린 좌사가 보고 들었고, 그는 매우 슬펐다. 자신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정말 무능력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반드시 열심히 공부해 성과를 이루리라.
날이 가고 해가 거듭되면서 좌사는 점점 성장했다. 그는 끊임없이 노력하며 부지런히 공부했고, 마침내 학식이 풍부한 사람으로 성장했으며, 문장 실력도 매우 뛰어났다. 그는 1년 만에 『제도부(齊都賦)』를 완성했는데, 이는 그의 문학적 재능을 보여주었고, 훌륭한 문학가가 되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그는 삼국시대 위(魏), 촉(蜀), 오(吳) 세 나라 수도의 풍토와 인심, 물산을 주제로 『삼도부』를 집필하기로 계획했다. 내용과 구조, 언어 등 여러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그는 정신을 집중해 연구하고, 정성스럽게 글을 썼으며, 잠도 잊고 밥도 잊고 일에 매달렸다. 꼬박 1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고 나서야, 문학 대작 『삼도부』가 마침내 완성되었다.
『삼도부』는 높은 평가를 받았고, 사람들은 이를 한나라의 문학 걸작 『양도부(兩都賦)』와 견주었다. 당시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삼도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오로지 손으로 베껴 읽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베껴 쓰는 사람이 너무 많아 수도 낙양의 종이 수요가 공급을 훨씬 초과했고, 일시적으로 도시 전체의 종이값이 크게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