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임을 지고 먼 길을 가다 (負重致遠)

【해석】
부(負): 지고 가다; 치(致): 전달하다.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간다는 뜻으로, 중대하고 어려운 과제를 감당할 수 있음을 비유한다.

【출전】
삼국지·촉서·방통전: "육자는 말하자면 재주 없는 말이지만 빠르게 달릴 힘이 있고, 고자는 말하자면 더딘 소가 중한 짐을 지고 먼 길을 갈 수 있다."

해석: 육 선생은 빠르게 달리진 못하지만 다리 힘이  fuerte 말처럼 뛰어난 재능을 지녔고, 고 선생은 매우 느리지만 인내심 있게 일하는 소처럼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곳까지 갈 수 있다.

【성어 이야기】
방통(龐統)은 자가 사원(士元)이며, 병추(鳳雛)라는 별호를 가진 인물로, 한나라 시기 형주 상양(지금의 후베이 상양) 출신의 동한 말기 유명한 책사이다. 어릴 적 방통은 성정이 소박했고, 겉보기에는 그리 영리해 보이지 않았다. 그 당시 영천의 사마휘는 청아한 성품을 지니고 인물을 알아보는 데 능했다. 방통이 스무 살 되던 해에 그를 뵙기 위해 찾아갔다. 사마휘는 뽕나무 위에 앉아 누에를 먹일 뽕잎을 따고 있었고, 방통은 나무 아래에 앉아 서로 낮부터 밤까지 대화를 나누었다. 사마휘는 방통의 재능에 크게 놀라, 남주(南州)의 선비들 중 방통과 견줄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평가했다. 사마휘의 이 말 덕분에 방통은 점차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상양의 방덕공은 방통을 '병추(鳳雛)', 제갈량을 '와룡(臥龍)', 사마덕조를 '수경(水鏡)'이라 불렀다. 서서는 유비에게 "와룡과 병추, 둘 중 하나를 얻으면 천하를 안정시킬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둘은 모두 당대의 영걸로서, 그 재능은 천하를 통틀어 그 누가 따라잡지 못할 정도였다.

당시 동오 주유가 남군 태수로 있을 때, 방통은 그의 손에서 공조(功曹, 한나라 시대 군수 아래에 둔 관직으로 인사관리를 담당하며, 군이나 현의 정무에 참여할 수 있었다)로 일했다. 이후 주유가 갑작스럽게 중병에 걸려 바구에서 죽자, 방통은 당시 주유의 공조로서 장례를 위해 동오로 갔다. 동오 사람들은 대부분 방통의 이름을 들어본 바 있었고, 방통이 돌아가려 할 때, 육적, 고소, 전종 등과 함께 모두 그를 창문까지 배웅했다. 방통은 그들의 의도를 알고, 이들에게 말했다. "육적은 말하자면 재주 없는 말이지만 빠르게 달릴 힘이 있고, 고소는 말하자면 더딘 소가 중한 짐을 지고 먼 길을 갈 수 있다." (원문: "육자는 말하자면 재주 없는 말이지만 빠르게 달릴 힘이 있고, 고자는 말하자면 더딘 소가 중한 짐을 지고 먼 길을 갈 수 있다.") 이어 전종에게는 "당신은 관대하고 명성을 사랑하는 성정이라, 여남의 번자소를 닮았소. 비록 지력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일시의 훌륭한 인물이라 할 수 있소."라고 말했다. 육적과 고소는 방통에게 "천하가 평정된다면, 당신과 함께 천하의 명사들을 평가하고 싶소."라고 말했다. 이에 동오의 육적, 고소, 전종 등은 방통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다.

나중에 누군가 방통에게 물었다. "선생님 보시기에 육적과 고소 중 누가 낫습니까?" 방통이 답했다. "비록 재주 없는 말이라도 훌륭하다면 한 사람만을 태울 뿐이다. 그러나 더딘 소는 하루에 서른 리를 가며 지는 짐이 단 한 사람의 무게만 되겠는가?" 전해진 바에 따르면, 고소가 방통을 찾아가 그의 집에 머물며 대화를 나누었다. 고소가 물었다. "당신은 사람을 알아보는 데 뛰어나다는 소문이 있는데, 나와 당신 중 누가  khá 낫다고 보십니까?" 방통이 말했다. "세속을 다스리고 인물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일에는 제가 당신에게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임금을 위해 책략을 세우고 천하를 다스리는 일이라면, 제가 당신보다 조금 나을 수 있겠지요." 고소는 방통의 말이 이치에 맞다고 생각하고, 그와 더욱 친해졌다.


동한 말, 상양의 명사 방덕공에게는 학식이 뛰어난 조카 방통이 있었다. 그때 용중에 은거하고 있던 제갈량은 자주 방덕공을 방문하였고, 방통과도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방덕공은 두 사람의 재능을 매우 높이 평가하여, 제갈량을 '와룡(臥龍)', 방통을 '병추(鳳雛)'이라 불렀다. 방덕공의 눈에 비춰볼 때, 이 둘은 모두 당대의 영걸이었다.

주유가 남군 태수로 재직할 때, 방통은 그의 공조로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유가 병사하자, 방통은 장례를 위해 오군으로 갔다. 오군의 많은 문인들이 이미 방통의 명성을 들어 알고 있었기에, 그가 남군으로 돌아가려 할 때 모두 그를 찾아왔다. 당시 매우 유명했던 문인 육적, 고소, 전종 등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창문에서 모여 이별을 나누며 옛날과 오늘날을 논하며 매우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이야기 도중, 여러 명사들이 방통에게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평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방통은 먼저 강동의 유명한 학자 육적을 평가하며 말했다. "육 선생은 빠르게 달리진 못하지만 다리 힘이 쌘 말처럼 뛰어난 재능을 지녔습니다." 여러 명사들이 듣고 모두 그 평가가 정확하다고 칭찬했다. 이어 방통은 고소를 평가하며 말했다. "고 선생은 매우 느리지만 인내심 있게 일하는 소처럼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곳까지 갈 수 있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평가해 달라고 하자, 방통은 다소 자부심을 가지고 말했다. "임금을 위해 책략을 세우고 천하를 다스리는 일이라면, 저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