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종 경덕원년(서기 년) 어느 날 아침, 대송나라 수도 변경(현재의 카이펑)의 재상 관저에서는 연회가 성대하게 열렸다. 관저 앞에는 인산인해를 이루며 차량이 끊이지 않았고, 수도의 고관들과 귀족들이 두둑한 선물을 들고 하나같이 재상 관저로 몰려들었다. 오늘은 새로 임명된 재상 고준(寇準)의 43세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고준은 태사의자에 바르게 앉아, 만족감에 찬 기분으로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한 하인이 고준 곁에 다가와 귀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주인님, 문밖에 한 노파가 있는데, 우리 집 오랜 하녀인 류마(劉媽)라며 주인님께 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류마?" 고준은 마음이 놀랐다. "십 년 넘게 못 봤는데, 이런 때에 무슨 일로 온 거지? 안……" '만나'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고준은 어쩐지 마음이 불편했다. 류마는 비록 하녀였지만 고가(高家)에서 오랫동안 성실하고 충성스럽게 모시며 어머니를 정성껏 돌보았던 사람인데, 어찌 만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말을 바꿔 말했다. "류마를 대청으로 모셔오너라."
잠시 후, 늙어 몸이 불편한 류마가 지팡이를 짚고 비틀비틀 고준 앞에 다가와 말했다. "주인님,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한 뒤, "쿵" 소리와 함께 무릎을 꿇고 양손으로 두루마리를 내밀었다. 고준은 서둘러 다가가 류마를 일으켜 세우고 두루마리를 받아들며 물었다. "이게 무엇이냐?"
류마가 답했다. "이것은 태부인께서 생전에 주인님께 남기신 그림입니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유물인데, 어찌하여 오늘에야 가져오느냐?"
"태부인께서는 제게 분명히 지시하셨습니다. 반드시 적절한 시기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주인님께 전하라 하셨기에, 감히 어길 수 없었습니다."
고준은 이 말을 듣고 조용히 두루마리를 펼쳤다. 단번에 그림을 본 순간, 온몸이 소름이 돋았다. 그림 속에는 강풍이 몰아치고 폭설이 휘날리는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 한가운데에는 낡은 초가집 하나가 있었고, 집 안에서는 흐릿한 등불이 깜빡이고 있었다. 등불 왼쪽에는 실을 치며 옆에 있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가 있었고, 아들은 등불 아래에서 정성껏 책을 읽고 있었다. 그림의 오른쪽 위에는 어머니의 친필로 쓴 '한창과자도(寒窗課子圖)' 다섯 글자가 있었으며, 왼쪽 아래에는 어머니가 직접 쓴 시 한 수가 적혀 있었다.
"외로운 등불 아래 고된 공부, 네가 백성을 위해 덕을 닦기를 바라노라. 근검절약은 자애로운 어머니의 가르침, 훗날 부귀해져도 가난했던 과거를 잊지 말라."
그림을 다 보기도 전에 고준은 이미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원래 고준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오로지 어머니가 실을 치고 천을 짜며 가족을 부양했기 때문에 가세가 매우 빈곤했다. 비록 삶이 매우 고달팠지만, 고모는 자식을 가르치는 책임을 잊지 않았다. 그녀는 종종 밤마다 실을 치며 어린 고준에게 책을 가르쳤다. 엄격한 어머니의 가르침 아래, 영리한 고준은 학업이 빠르게 진보하여 19세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당시 가장 젊은 진사(進士)였다.
고준이 과거에 급제한 해, 그의 어머니는 불행히도 중병에 걸렸다. 임종을 앞두고 어머니는 직접 그린 '한창과자도'를 곁에 있는 류마에게 주며 당부했다. "훗날 고준이 관직에 나가, 잘못을 저지를 때가 되면 그때 이 그림을 전하여라." 이 말을 마친 후, 평생을 고생하며 살아온 어머니는 결국 기름이 다 떨어진 등불처럼 꺼져갔다.
고준이 처음 관직에 있을 때는 청렴하고 검소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치스럽고 겉치레를 중시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류마는 때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하고, 고준이 크게 생일잔치를 여는 기회를 틈타 어머니의 유화를 전달하여 그를 계도하려 했다.
어머니의 유화를 본 고준은 과거 자신과 어머니가 겪었던 고통스러운 나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고, 특히 어머니가 '유화교자(遺畫敎子)'라는 뜻 깊은 교훈을 남긴 마음에 깊이 감동했다. 이에 고준은 즉시 생일잔치를 취소하고 선물들을 모두 돌려보내라고 명령했다. 그 후 고준은 어머니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검소하게 집안을 꾸리고, 성실히 공무에 임하여 마침내 한 시대를 빛낸 현명한 재상, 명재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