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후 대국들이 패권을 다투는 투쟁 속에서, 대국들은 소국들을 병합하며 땅을 넓혔다. 그러나 대국의 제후들은 새로 얻은 땅을 공을 세운 대부들에게 봉건으로 나누어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로 인해 대부들의 세력이 커졌고, 그들 사이에서도 끊임없이 갈등이 발생했다. 대국 내부의 모순은 날로 심화되어, 모두 패권 다툼의 전쟁을 잠시 멈추고 싶어 했다.
왕망의 주력군대는 이미 소멸되었고, 주요 거점은 장안과 낙양이라는 두 도시만 남아 있었다. 홍농(현재의 허난성에 위치) 군의 수장 왕헌은 아예 한나라 군에 투항했고, 많은 호강 세력들도 왕헌을 따라 장안을 공격했다. 그들은 도시 안팎에 사방에 불을 질렀다. 왕망은 예복을 입고 단도를 들고 전전에 앉아, 60만 근의 금과 다른 보물을 지키며 마지막 저항을 하고 있었다.
염전(짚신)을 신고 조정에 나아가 일을 보고, 용포에는 보따리를 들었다. 23년 동안 황제를 하면서 궁전을 지은 적도 없고, 정원을 수리한 적도 없으며, 수레나 의장도 늘린 적이 없고, 심지어 개나 말 한 마리도 늘린 적이 없다. 여러 차례 명을 내려 지방 제후국들이 희귀하고 귀한 보물을 바치는 것을 금지했다. 자신을 위해 미리 지은 능묘조차도 간소하게 하라고 요구했다.
사마천의 『사기·고조본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유방이 천하를 차지한 경험을 정리하며 말하기를, "...帳幄(帳과 幕) 안에서 계책을 세우고 천 리 밖에서 승패를 결정하는 일에는 나는 자방(자량)만 못하다.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보호하며 군량을 공급하고 군량 수송로를 끊기지 않게 하는 일에는 나는 소하만 못하다. 백만 대군을 이끌고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공격하면 반드시 점령하는 일에는 나는 한신만 못하다. 이 세 사람은 모두 뛰어난 인재이다.
제후 대국들이 패권을 다투던 시대에, 강대국들은 약소국들을 병합하며 영토를 확장했다. 그러나 대국의 군주는 새로 얻은 땅을 공을 세운 대부들에게 봉해줘야 했다. 이로 인해 대부들의 세력이 커졌고, 그들 사이에서도 자주 갈등이 발생했다. 대국 내부의 모순이 심화되면서, 각국은 패권 다툼을 잠시 멈추고 싶어 했다.
서진(西晉) 시대에는 왕개(王愷)와 석숭(石崇)과 같은 극도로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가문의 관료들 외에도, 또 다른 무리의 사족(士族) 관료들이 있었다. 이들은 밥을 배부르게 먹고는 정작 할 일은 하지 않고, 삼삼오오 모여 허풍을 떨며 현실과 동떨어진 터무니없는 괴이한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황하 하류에 상(商)이라는 부족이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상나라의 조상인 계(契, 음: 시에)는 요순 시대에 우(禹)와 함께 홍수를 다스렸으며, 큰 공을 세운 인물이었다. 이후 상 부족은 축산업이 빠르게 발전하여 하왕조 말기, 탕(湯)이 수장이 되었을 무렵에는 이미 강력한 부족으로 성장해 있었다.
위충현의 환관 일당이 명나라 조정을 어지럽히고 있을 무렵, 후금의 칸 누르하치는 계속하여 요동 지방의 명나라 군대를 공격하고 있었다. 사얼후 전투 이후, 명나라는 노장인 웅정필을 파견하여 요동 지역의 군사 작전을 지휘하게 했다. 웅정필은 능력 있는 장군이었으나, 광녕(현재 랴오닝성 베이진) 순무였던 왕화진은 웅정필의 출관(산해관 밖으로 나감)이 자신의 입지를 위협한다고 여겨, 온갖 수단을 동원해 웅정필의 지휘를 방해했다.
전국시대에 악의를 상장군으로 삼은 연나라는 여러 나라의 군대와 연합하여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제나라에 대규모 공격을 개시했다. 연군은 무적의 기세로 순식간에 제나라의 수도 임치를 함락시키자, 제왕은 겁에 질려 산동 지방으로 도망쳤다. 그때 초나라는 농이라는 성을 가진 장군을 파견했는데, 입만 열면 제나라를 지원하겠다고 외쳤다. 제왕은 이를 진심으로 믿고 그를 재상으로 임명했다. 그런데 그는 진심으로 도우려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이용해 연나라와 함께 제나라를 분할하려는 속셈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왕은 이 교활한 자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속담에 "먼저 손 쓰는 자가 유리하고, 나중에 움직이는 자는 화를 입는다"고 했다. 군사상 '선발제인(先發制人)'은 중요한 명제이다. 이미 『좌전』에는 "선수를 치면 적의 의지를 꺾을 수 있다"는 말이 있으며, 후세에도 "병사는 먼저 행동하는 것이 귀하다", "내가 먼저 적을 공격할지언정, 적에게 먼저 공격당하지 말라"는 주장들이 많았는데, 모두 작전에서 선제권을 잡으려는 뜻이다. 그러나 모든 일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후발제인(後發制人)'도 군사적 투쟁의 중요한 수단이며, '선발제인'과 변증법적인 통일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