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당나라 이후 50여 년간 왕조가 바뀌는 속도는 마치 달걀전을 뒤집듯 빠르기 그지없어, 어느 시대와 견주어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를 역사적으로 '오대십국'이라 부른다.
그러던 중 서기 959년 여름, 후주(後周) 현덕(顯德) 6년, 주세종(周世宗) 채영(柴榮)이 서른아홉의 나이에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그리하여 황제의 자리에는 그의 아들 채종훈(柴宗訓)이 즉위하게 되었다. 채종훈은 겨우 일곱 살에 불과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였으므로, 많은 사람들의 탐심을 자극하게 되었다.
주세종은 본래 담력과 안목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가까운 곳을 토벌하고 먼 곳을 정벌하여 국토를 넓혔을 뿐 아니라, 지방 영주들의 군사력을 최대한 약화시키고 금군(禁軍)을 강화하는 등, 지방의 군사력을 약화시키면서 수도와 황제를 보호하는 중앙군의 실력을 크게 강화시켰다. 이는 당나라 시대에 번진(藩鎭)의 절도사들이 지나치게 강성하고 중앙군의 전력이 약했던 교훈을 얻은 것이다. 주세종이 죽기 전 당시, 금군의 최고 사령관인 전전도점검(殿前都點檢)은 장영덕(張永德)이 맡고 있었다. 당시 개봉(汴京)에서는 "점검이 천자가 된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이는 점검의 직책을 맡은 사람이 황제가 될 것이라는 의미였다. 주세종은 장영덕이 반란을 꾀할 증거를 찾을 수는 없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기 때문에, 핑계를 대어 장영덕을 파면하고, 조광윤(趙匡胤)으로 하여금 금군의 사령관을 맡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