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일몽

수나라 말년 당나라 초엽에 춘어존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고향은 광릉이었다. 그의 집 마당에는 뿌리가 깊고 잎이 무성한 커다란 나한나무가 있었다. 무더운 여름 밤, 달이 밝고 별이 드문드문한 가운데 나무 그림자가 너울거리고 밤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시원하게 쉬기 좋은 곳이었다.

천신만화(千变万化)

어느 날, 주목왕이 곤산에서 합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옌스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의 솜씨가 매우 정교하여 만든 동물이 울고 뛸 수 있다고 들었다. 그는 이를 다소 믿기 어려워하며 즉시 옌스를 불러들여 물었다. '네가 온갖 정교한 장난감을 만들 수 있다고 들었는데, 한 가지를 꺼내 보여다오.'다음 날, 옌스는 나무로 조각한 인형을 가지고 목왕을 알현했다. 목왕이 그 인형들을 보니 얼굴의 다섯 기관이 모두 갖추어져 있고, 눈썹과 수염이 실제 사람과 다름없이 생생하여 매우 놀랐다.

새를 다 잡으면 활을 숨긴다 (鳥盡弓藏)

월왕 구천은 초침욕담(臥薪嘗膽)하며 대신 문종과 범려를 등용해 국정을 정비하였다. 10년간 인구와 자원을 축적하고, 10년간 백성들을 교육시켜 나라를 약에서 강으로 전환시켰으며, 마침내 오나라를 격파하고 국치를 씻어냈다. 오왕 부차는 전쟁에서 패배하여 도망쳤고, 월나라에 일곱 차례나 화평을 요청하였으나, 문종과 범려는 끝까지 허락하지 않았다. 부차는 어쩔 수 없이 편지를 화살에 묶어 범려의 진영으로 쏘아 보냈다.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

집을 사랑하면 그 지붕의 까마귀까지 사랑한다 (愛屋及烏)

전설에 따르면, 은상(殷商) 말기의 주왕(紂王)은 극도의 사치와 쾌락을 추구하며 잔혹하고 도리 없는 어리석은 군주였다(『주주위악(助紂為虐)』 참조). "서백(西伯)"(서방 제후들의 우두머리) 기창(姬昌), 즉 후의 주문왕(周文王)은 주왕에 반대했다가 투옥되었고, 많은 방법을 동원하여 겨우 옥중에서 풀려났다. 당시 주(周)의 수도는 기산(岐山, 지금의 섬서성 기산현)에 있었다. 주문왕이 기산으로 돌아온 후, 상나라의 통치를 무너뜨리기로 결심하였다.

요령을 얻지 못하다 (不得要領)

이 성어는 『사기(史記)·대완열전(大宛列傳)』에서 유래하였다. "건(騫, 장건)이 월지(月氏)에서 대하(大夏)에 이르렀으나 결국 월지의 요령을 얻지 못하였다."한무제가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북방 흉노로부터 항복해 온 사람들은 모두 흉노가 월지(月氏)를 무찔렀고, 월지 왕의 머리뼈로 큰 술잔을 만들었으며, 월지 사람들을 쫓아내고 말았고, 월지 사람들은 흉노에 대해 강한 원한을 품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흉노를 공격하고 싶었지만 다른 나라의 도움을 얻지 못했다.

기치를 뽑아 새 기치로 바꾸다 (발치역치)

이 속담은 『사기(史記)』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서 유래하였다. "한밤중에 군사를 출동시키며, 경기병 이천 명을 뽑아 각자 붉은 깃발 한 개씩을 들게 하고, 비밀로 산길을 돌아 조군을 바라보게 하며 명령하기를, '조(趙)나라가 우리가 도망가는 것을 보면 반드시 영채를 비우고 우리를 쫓아올 것이다. 그때 빠르게 조군 진영 안으로 들어가 조나라 깃발을 뽑아내고 한(漢)나라 붉은 깃발을 세워라.'" 라고 하였다.

문을 닫고 과오를 반성하다

서한 소제(昭帝) 시절, 연나라 사람 한연수(韓延壽)는 동군(東郡, 지금의 산동성 운성)의 태수를 지낸 적이 있다. 그는 부하들의 충고를 잘 듣고 좋은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유명했다. 동군에서 3년간 관직에 있으면서 명령이 엄격하고 사건 처리가 과감하고 신속하여 결과적으로 사회 풍기가 크게 개선되었고, 동군은 당시 전국에서 가장 잘 다스려진 군현이 되었다. 이후 한연수는 좌풍의(左馮翊, 지금의 삸시성 다리)의 태수로 부임하였다. 임기 초 몇 해 동안은 지방을 순시하러 다닌 적이 전혀 없었다.

당나라 서예가 장서

장서는 당나라의 유명한 서예가이다.한때, 글씨 연습을 무척 좋아하던 안진경은 벼슬을 버리고 장서의 문하에 들어가 글씨를 배우려 했다. 그는 유명한 스승의 제자가 되면 금방 글씨의 요령을 터득해 단번에 명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스승이 된 후 장서는 그에게 글씨 연습의 비결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글씨체의 특징을 간단히 알려주고, 유명한 서예가들의 글씨 베끼는 책을 몇 권 소개해 주며 안진경으로 하여금 그것을 따라 쓰게 할 뿐이었다. 가끔 장서가 술기운을 살짝 취한 후에는 안진경을 데리고 산에 오르고, 물놀이를 하고, 장터를 보고, 연극을 보러 다녔다. 집에 돌아오면 다시 안진경에게 글씨를 쓰게 하거나, 자신이 붓을 휘두르며 빠르게 글을 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빛나는 사탕

1987년 미국 버지니아 주의 두 우체국 직원 톰 콜맨과 빌 슬롯은 우연히 한 아이가 녹색 빛을 내는 형광봉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다른 어른들처럼 그냥 웃고 지나가지 않고, 그들은 바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게 꽤 흥미로워 보이긴 하는데, 어디에 쓸 수 있을까?" 두 사람은 막연하게 이것저것 생각해 보았고, 마침내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바로 형광봉 꼭대기에 막대사탕을 붙이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빛이 반투명한 사탕을 통과해 마법 같은 효과를 만들어내고, 특히 밤에는 그 효과가 더욱 뚜렷해졌다.

고양주인(高陽酒人)

"주인(酒人)이라는 두 글자를 꺼내 들면,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고 실로 사소한 일을 크게 부풀리는 것이다.所谓 주인(酒人), 그저 술을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다. 『사해(辭海)』에서는 스스로를 주인이라 칭하면 광오함이 내포되어 있고, 남을 주인이라 칭하면 대부분 비하하는 뜻을 담고 있어 상당히 타당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고대인들의 시각에서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았다. 당나라의 유명한 문학가 원결(元結)은 주인을 두고 찬양하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 '산을 술잔 삼고, 물을 연못 삼아, 주인들이 섬마다 뚜렷이 앉아 있네.' 고양주인(高陽酒人)을 말하면, 한(漢)나라는 그의 나라에 대한 공로를 칭송하며, 술로써 큰일을 이룬 기록도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