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락상마 (伯樂相馬)

전설에 따르면 하늘에서 말을 관리하는 신선을 백락(伯樂)이라 한다. 인간 세계에서는 말의 품질을 뛰어나게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을 역시 '백락'이라 부른다.최초로 백락이라 불린 사람은 본명이 손양(孫陽)으로, 춘추 시대의 인물이었다. 그가 말에 대해 매우 뛰어난 연구를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본래 이름을 잊고, 그냥 '백락'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이 이름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배수일전(背水一戰)

이 사자성어는 『사기(史記)·회음후열전(淮隂侯列傳)』에서 유래하였다. "신(信, 한신)이 만 명을 선봉으로 보내, 진군하여 강을 등지고 진을 쳤다. 군사들은 모두 결사의 각오로 싸워 패배할 수 없었다." 한신(韓信)은 회음(淮陰, 지금의 장쑤성 칭장 남서쪽) 사람으로, 한왕 유방(劉邦)의 대장이었다. 항우(項羽)를 물리치고 천하를 차지하기 위해 그는 유방을 위해 계책을 세웠다. 먼저 관중(關中)을 공략한 후, 황하를 동쪽으로 건너 유방을 배신하고 항우를 섬기던 위왕 포(魏王豹)를 격파하여 포로로 잡았다. 이어 동쪽으로 진격해 조왕 섭(趙王歇)을 공격했다.

태산과 같이 안정되다 (安如泰山)

이 사자성어는 전한(前漢) 시대의 매승(枚乘)이 지은 『오왕에게 올린 간쟁서(上書諫吳王)』에서 유래하였다. "충신의 말을 들으면 백 가지 일을 하더라도 반드시 기쁨을 얻을 것이다. 만약 하고자 하는 바를 고집한다면 그 위험은 달걀을 쌓는 것보다 더하고, 하늘에 오르는 것보다도 어렵다. 그러나 하고자 하는 바를 바꾼다면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우며, 태산처럼 안정될 수 있다."

한 끼의 밥이 천금의 가치를 지닌다

한신(韓信)은 전한 초기에 위세를 떨친 한 명의 위대한 장군이다. 본래 회음(淮陰) 사람으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 부모를 모두 여의었으며, 성격이 방종하고 예절에 구애받지 않았다. 집안에 재산이 없어 벼슬을 추천받을 수도 없었고, 장사나 농사를 지을 줄도 몰라 평생을 가난하고 궁핍하게 살았다. 밥을 제때 얻어먹지 못하고, 여기저기서 남의 도움을 받아 연명하며, 한 끼는 이 집에서, 또 한 끼는 저 집에서 얻어먹는 신세였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싫어했다.

손빈의 이야기

전국시대의 유명한 군사가. 생몰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본명도 전해지지 않는다. 약 기원전 4세기 후반에 활동했고, 제나라 사람(지금의 산둥성 쩐청 현)이며 오나라 장군 손무의 후손이다. 그는 어릴 적 명문 고인 귀곡자에게서 팽건과 함께 수학했다고 전해진다. 팽건은 위혜왕의 장군이었으나 손빈의 재능을 시기하여 그를 위나라로 속여 데려와 빈형(무릎뼈를 절단하는 형벌)을 가했다.

결영지회(絕纓之會)

초장왕은 춘추오패(春秋五霸) 중 한 명으로, 춘추 시대 초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업적을 세운 군주였다.한 번은 초장왕이 대승을 거두고 매우 기뻐하여 궁중에 성대한 연회를 베풀고 신하들을 불러 잔치를 벌였으며, 궁전 안은 온통 북적북적했다. 초왕 역시 기분이 좋았던 나머지 가장 총애하는 후궁인 허기(許姬)를 불러 신하들에게 돌아가며 술을 따라주게 하여 분위기를 돋웠다.

결초회환

'결초(結草)' 이야기는 『좌전·선공 15년』에 나온다. 춘추 시대 진나라의 위무자(魏武子)에게는 애첩이 있었다. 위무자가 병에 걸렸을 때, 그의 아들 위과(魏顆)에게 말했다. "내가 죽은 후에는 반드시 그녀를 장가보내라." 얼마 후 위무자의 병세가 악화되자 다시 위과에게 말했다. "내가 죽은 후에는 반드시 그녀가 나를 따라 죽도록 하라(순장)." 위무자가 죽은 후, 위과는 그 애첩을 죽여 함께 묻지 않고, 다른 사람과 결혼시켰다. 위과는 "사람이 병이 심하면 정신이 혼미해지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가 정신이 맑을 때 내린 명령을 따랐다"고 말했다.

베개를 부채질하고 이불을 데우다

동한 시대, 황향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아주 어릴 때부터 부모를 가까이하며 효도하는 법을 알았다.그가 아홉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아버지 혼자 그를 키웠다. 황향은 아버지의 고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아버지께 각별히 효도했으며, 집안의 모든 일을 혼자서 떠안았다. 다른 아이들이 놀고 있을 때, 그는 집에서 장작을 패고 밥을 지어 아버지가 더 많은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

제갈량, 눈물을 흘리며 마속을 베다

동한 말기, 천하는 위, 촉, 오 삼국이 삼족鼎립(정립)하는 형세였다. 유비가 건립한 촉한 정권은 비록 중국의 남서부에 안주하고 있었지만, 늘 북벌하여 위나라를 정벌하고 천하를 통일하며 한나라 왕실의 기반을 회복하고자 했다. 안타깝게도 유비는 생전에 이 소망을 이루지 못했다. 승상 제갈량은 선제의 유지를 완수하기 위해 대군을 거느리고 북벌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