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暗箭)로 사람을 해치다 (암살상인, 暗箭傷人)

이 사건은 『좌전(左傳)·은공(隱公) 11년』에 기록되어 있다. 그해 여름 5월, 정장공은 궁전 앞에서 군대를 검열하고 전차를 배분했다. 한 노장 장수 영숙고(潁叔考)와 한 젊은 장수 공손자도(公孫子都)가 전차를 놓고 다투다가 말다툼을 벌였다. 용장인 영숙고는 나이를 무릅쓰고 전차를 몰고 도망쳐 버렸다. 늘 남을 깔보던 공손자도는 당연히 양보하지 않았고, 장창을 뽑아 급히 쫓아갔다. 그러나 그가 큰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영숙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 일로 공손자도는 마음속에 원한을 품게 되었다.

자법자폐

상앙이 변법을 시행할 때, 우선 귀족들의 특권을 폐지하고 군공의 크기에 따라 작위를 다시 부여하도록 규정하였다. 이로 인해 귀족들은 공을 세우지 않고도 녹봉을 받는 특권을 잃게 되었고, 상앙에게 매우 불만을 품게 되었으나, 상앙은 진효공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귀족들이 마음속으로 원한을 품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진나라는 변법을 시행한 후 금세 강성해졌고, 생산력이 크게 향상되었으며 국고가 풍족해지고 장수들은 용맹하게 싸워 여섯 나라를 진압할 만큼 위세를 떨쳤다.

천재난봉(千载难逢)

이야기:당나라의 유명한 문학가 한유(韩愈)는 어렸을 때 부모를 잃고 형수에게 길러졌다. 그는 꾸준히 자학하여 젊은 시절부터 책을 광범위하게 읽고 학문적으로 견고한 기초를 다졌다. 35세 때 경도(京城)에 갔고 국자감 박사(国子监博士)를 역임했으며, 나중에는 형부 시랑(刑部侍郎)으로 승진했다. 당시 불교가 성행했고, 당헌종(唐宪宗)도 불교를 매우 숭배했다. 그는 어떤 사원에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의 유골이 모셔져 있다는 소식을 듣고, 큰 규모로 사람을 동원하여 그 유골을 궁궐에 모셔다 드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유는 이 일에 대해 매우 반감을 느끼고 《간영불골표》(《谏迎佛骨表》)를 써 반대했다.

백보천양(百步穿楊)

백기(白起)가 위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간다는 소식을 듣고, 모사 소려(蘇厲)라는 사람이 서둘러 주나라의 국군을 찾아가 경고했다. "위나라가 진나라 군대에 의해 점령당하면 전하의 처지도 위험해질 것입니다." 당시 주나라 국군은名义上(의명상) 천자(天子)였지만, 실제로는 제후국들을 더 이상 통제할 수 없었다. 위나라가 진나라에 멸망당하면 진나라의 세력이 더욱 강해져 주천자에게 더 큰 위협이 될 것이었다.

파경중원(破鏡重圓)

남조 말기, 수나라 문제 양견은 주변의 남진(南陳)과 북제(北齊)를 멸망시키고 수나라를 건국하였다. 당시 남방에는 여러 작은 국가들이 공존하고 있었는데, 수도가 건강(建康, 오늘날의 난징)인 진나라가 그 중 하나였다. 수나라는 오랫동안 남방의 작은 국가들을 노리며, 언제든지 중국 전역을 통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서양단(首鼠兩端)

이 성어는 『사기(史記)·위기무안후열전(魏其武安侯列傳)』에 나온다. "무안후가 조정을 마치고 나와 지거문(止車門)에 이르러, 한안국(韓安國) 어사대부를 불러 자신의 수레에 타게 하며 노하여 말하기를, '장유(長孺)와 함께 이 늙은 대머리 노인 하나를 처리하는데, 어찌하여 서서양단(首鼠兩端)하느냐?'"

반문농부(班門弄斧)

노반(魯班)은 성은 공수(公輸), 이름은 반(般)이라고 하며, 전국시대 노나라 사람으로 노반(魯般)이라고도 불린다. 정교한 기구를 만들기에 능한 명장으로 '교인(巧人)'이라 불렸다. 민간에서는 오랫동안 목수들의 시조로 숭배되어 왔다. 누가 감히 노반 앞에서 도끼 사용 기술을 자랑하겠는가? 즉, 큰 전문가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는, 지나치게 비굴하지 못한 어리석은 행동을 '노반문전 농대부(魯班門前弄大斧)'라 하며, 줄여서 '반문농부(班門弄斧)'라 한다. 속담에서 말하는 '관공(關公) 앞에서 대도(大刀)를 휘두른다'는 표현과 의미가 거의 같다.

안보당차(緩步當車)

전국시대에 제나라에는 안명(顔斶)이라는 고결한 선비가 있었다. 제선왕은 그의 명성을 듣고 궁중에 불러들였다. 안명은 편안한 태도로 궁전 안으로 들어와 전각 앞 계단에 이르렀을 때, 선왕이 자신을 맞이하려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고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 선왕이 이상하게 여겨 외쳤다. "안명, 이리로 와보오!" 그러나 안명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오히려 선왕을 향해 외쳤다. "대왕, 이리로 오십시오!"

동파육

절강성의 도시와 시골에는 송나라의 대문호 소식(蘇軾)과 관련된 유명한 요리가 하나 있는데, 바로 '동파육(東坡肉)'이다. 이 요리는 거의 천 년 가까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그 유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무송이 범을 때린다

무송은 경양강 근처의 여관에서 술 열여덟 사발을 들이켠 후, 몽둥이를 거꾸로 들고 비틀비틀 걸으며 경양강으로 향하려 했다. 여관 주인이 뒤쫓아 나와 소리쳤다. "가시면 안 됩니다! 가시면 안 됩니다! 요즘 언덕 위에 범이 나타나서 벌써 스물셋에서 서른 명의 목숨을 앗아갔어요!" 무송은 듣고 웃으며 말했다. "날 겁주려 드는군. 정말 있다고 해도 난 무섭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