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후 대국들이 패권을 다투던 시대에, 강대국들은 약소국들을 병합하며 영토를 확장했다. 그러나 대국의 군주는 새로 얻은 땅을 공을 세운 대부들에게 봉해줘야 했다. 이로 인해 대부들의 세력이 커졌고, 그들 사이에서도 자주 갈등이 발생했다. 대국 내부의 모순이 심화되면서, 각국은 패권 다툼을 잠시 멈추고 싶어 했다.
아주 오래 전, 황하 강변에 한 가족이 살고 있었는데, 갈대를 베고 그물이나 쟁반을 엮어 생계를 유지하며 극도로 가난한 삶을 살고 있었다.어느 날, 아들이 강가에서 갈대를 베고 있는데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어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워졌으므로 잠시 앉아서 쉬었다. 그는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보며 아버지가 예전에 말씀하신 것을 떠올렸다. 강 가장 깊은 곳에는 많은 보물이 있지만, 누구도 감히 가지 못하는데, 그곳에 '리룡'이라는 사나운 흑룡이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생각했다.
춘추 시대에 공자는 당시의 학문 대가였다. 공자는 사사(私學) 강의의 풍조를 처음으로 개척하고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주창했다. 공자는 유가학파의 시조이다. 전해지기에 공자에게는 3천여 명의 제자가 있었고, 그중에서도 학식이 매우 깊은 72명은 '칠십이현(七十二賢)'이라 불렸다.
전국시대, 제나라는 조나라와 외교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사신을 파견하여 조위후(趙威后)를 방문했다. 제나라의 사신은 조나라에 가본 적도 없고, 조위후를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이미 조위후가 현명하고 덕이 높은 왕후라는 소문을 오래전부터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임무를 매우 기쁘게 받아들였다. 한단(邯鄲)에 도착한 그는 바로 조왕성으로 가 조위후에게 인사를 드리러 갔다.
서진(西晉) 시대에는 왕개(王愷)와 석숭(石崇)과 같은 극도로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가문의 관료들 외에도, 또 다른 무리의 사족(士族) 관료들이 있었다. 이들은 밥을 배부르게 먹고는 정작 할 일은 하지 않고, 삼삼오오 모여 허풍을 떨며 현실과 동떨어진 터무니없는 괴이한 이야기만 늘어놓았다.